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며 도입했으나, 현 정부에서 주택시장 규제 완화의 마지막 퍼즐이 된 한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분상제를 제외했다. 퍼즐을 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상제는 시장 가격에 상관없이 실제로 들어가는 땅값과 건축비로 분양가를 산정하는 가격 규제 정책이다. 신도시와 같은 공공택지에선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공공택지 이외의 민간택지(주로 도심 재건축지)의 경우 2007년 도입된 뒤 유명무실해졌다가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되살아났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전 8·2(2017년), 9·13(2018년) 부동산 대책을 통해 조세나 청약제도 등을 정비했다면, 이번 분양가상한제는 (집값 안정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말했다. 8·2대책 주요 내용이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재건축부담금 부활 등이고, 9·13대책은 종부세 다주택자 중과 등이다.
분상제로 조합원들 부담 증가
사업성 악화로 본청약 접기도
인기 지역선 과잉수요 부작용
고가 아파트는 '능력자'만 혜택
현 정부 들어 8·2, 9·13대책의 주요 규제가 대부분 풀렸다. 정부는 이번 8·8대책에서 민간택지 분상제와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은 재건축부담금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분상제는 공공택지에선 변함없고 민간택지에선 지난해 규제지역 대폭 해제 때 대부분 풀렸지만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는 지정지역으로 남아있다.
조합원이 분양보다 14억 더 들기도
분상제는 요즘 곳곳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재건축 사업장에선 조합원과 일반분양분의 가격 역전을 낳아 주민들의 재건축 추진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립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압구정 재건축 밑그림(정비계획)을 보면, 현재 시점 기준으로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분의 분양가는 분상제를 적용받아 3.3㎡(공급면적)당 8000만원이다. 전용 84㎡(35평형)가 28억2000만원이다. 전용 108㎡ 조합원이 전용 84㎡를 배정받으려면 40억5000만원으로 평가된 기존 집을 내놓고 2억원을 추가분담금으로 더 내야 한다. 재건축 비용이 총 42억5000만원으로, 분양받는 것보다 14억원 이상 더 드는 셈이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2차의 경우, 전용 92㎡를 소유한 조합원이 전용 84㎡를 배정받으려면 시세 28억7000만원의 기존 집을 내놓고도 추가분담금 4억1000만원을 내야 한다. 총 32억8000만원이 드는 셈이다. 하지만 전용 84㎡ 일반분양분 분양가는 분상제 적용을 받아 26억원에 불과(?)하다. 조합원들 사이에 “분양받는 것보다 싸게 새집을 갖기 위해 재건축을 하는데, 일반분양자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라는 볼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조합이 사업성을 높이려면 늘리는 게 유리한 일반분양을 반대로 줄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재건축은 새로 짓는 주택에서 가장 먼저 조합원 몫을 제외하고 예상 밖 조합원 등장에 대비한 여분(보류지)을 남겨놓은 뒤 남는 물량을 일반분양한다. 보류지는 조합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일반에 분양한다. 분상제 이전에는 소형 주택 위주로 최소한만 남겨뒀다. 지금은 분상제와 공개청약을 피할 수 있는 29가구까지 최대한 늘리고, 조합원이 가장 선호하던 펜트하우스(꼭대기층 고급주택)도 남겨둔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 잠원동 신반포4지구 등의 보류지가 29가구이다. 조만간 분양을 앞둔 강남구 청담동 청담삼익은 펜트하우스 4가구를 모두 보류지로 남길 예정이다. 보류지를 시세대로 팔면 일반분양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신반포3차·경남 보류지 매각 금액이 일반분양가보다 700억원 정도 더 비쌌다.
600억 계약금 손해 보고 사업 포기
공공택지 분상제도 삐걱대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사전청약한 5개 민간 아파트가 올해 본청약을 앞두고 계약금 손해를 감수하며 분양을 중도에 접었다. 업체들은 공급받은 택지를 반환했고 계약금 600억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업체 관계자는 “분양성과 상관없다. 공사비가 많이 올라 분상제 건축비로는 도저히 사업할 수 없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공공분양도 적자를 낼 수 있다. 현 정부의 새 공공분양 브랜드인 ‘뉴홈’ 분양가 기준인 주변 시세의 70~80% 이하를 맞추려면 분상제 가격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특히 주변 시세의 70% 이하인 ‘이익공유형’ 뉴홈은 분상제로 산정한 가격의 80%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분상제가 집값 안정에 기여했을까. 2019년 도심 분상제 확대 이후 집값은 더욱 뛰었다. 분양물량이 워낙 적어 분상제의 주택 수요 분산효과가 적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강남3구에 일반분양된 민간택지 분상제 물량이 1000가구도 안 된다.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 건수는 3만7000건이다.
분상제는 오히려 과잉수요를 낳았다. 분상제 아파트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저렴해 '로또'로 불리며 청약 돌풍을 일으켜왔다. 지난달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가 평균 527.3대 1, 경기도 성남시 금토지구 판교테크노밸리중흥S클래스가 1110.4대 1의 경쟁률을 각각 기록했다. 권대중 서강대 교수는 “분양제 청약자 상당수가 해당 주택에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시세차익을 기대한 가수요”라며 “분상제가 되레 강남 등 인기 지역 거품 수요를 만든다”고 말했다.
'능력자'여야 강남 로또 분양받아
그렇더라도 분상제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해 무주택 서민에게 낮은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고 상당한 시세차익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공공택지는 분상제 물량이 꾸준한 데다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나마 중산층 이하 가구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분양가가 20억원 정도에 달하는 강남 등의 민간택지 분상제 아파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현금부자, 고가 임대주택 세입자, 고가주택 소유자, 연소득이 1억원이 훨씬 넘는 고소득자, 아니면 금수저 등의 '능력자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제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분양가는 낮추는 게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발목 잡혀 정책적 오류가 이어지고 있다. 분상제 분양가 현실화가 시급하고 로또의 불공정한 독식도 내버려 둬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