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났을때 열폭주로 이어지는 현상을 최장 20분 동안 지연시키는 기술이 이르면 내년 출고되는 차에 적용된다. 개별(셀) 배터리를 포장하는 패킹 기법을 고도화해 발화 시간을 지연 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패킹 기법의 배터리 열폭주 지연 시간은 5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에 전기차용 배터리팩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는 최근 이같은 화재 지연 기술을 개발해 최종 점검 단계를 밟고 있다. 패킹 기법을 향상시키고 내화성(耐火性)이 더 강한 소재를 사용해, 전기차 화재 위험 징후가 발견됐을 때 탑승자가 대피할 시간을 20분까지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기차 한 대엔 300~500개의 배터리 셀이 들어간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 수록 더 많은 배터리가 탑재된다. 셀 하나에서 불이 발생했을 때 다른 셀로 불길이 퍼지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데, 이 셀 사이를 막아주는 게 발화 지연 기법의 핵심이다.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기술은 배터리시스템 설계와 절연소재로 나뉜다. 배터리 셀 간의 면압력(두 물체의 접촉면에 따라 받는 힘)을 줄이고 내화성(불에 잘 타지 않고 견딤)을 높이는 방식을 개발했다. 셀 사이에는 우주왕복선 단열재로도 사용되는 실리콘 등을 활용한 소재를 개발해 얇은 패드를 끼웠다. 내화실리콘은 최대 섭씨1600도의 열도 견딜 수 있다.
차량 하부 배터리시스템(모든 셀과 여러 전장부품을 통합한 대형제품) 케이스에도 내화패드를 붙였다. 여기에 특별 도료를 입혀 배터리 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옆에 있는 셀로 열이 전이되는 시간을 20분까지 늦출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내년부터 양산차에 적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열폭주 전이 기술은 사실상 검증까지 끝난 상황”이라며,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전기차에 최종 적용해 테스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궁극적으로는 셀 간 열 전이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전기차에 열폭주 지연 기술을 적용하도록 하는 규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에선 2021년 세계 최초로 전기차에서 최소 5분간 열폭주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를 신설했다. 유럽 역시 지난 2023년 해당 법규를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은 법규 제정을 검토 중이다. 이 규제는 출시 전 인증된 소재와 기법을 썼는지 사전 검증을 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조자 책임을 묻는 판단 기준으로 쓰인다. 중국과 유럽에선 열폭주 지연 의무 시간을 현재 5분에서 20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