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어렵다는 1000억 패션…'마뗑킴' 받쳐준 황금손 정체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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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명동에 오픈한 마뗑킴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3층 규모로 의류, 액세서리, 남성복 등을 모두 판매한다. 사진 마뗑킴

지난 15일 서울 명동에 오픈한 마뗑킴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3층 규모로 의류, 액세서리, 남성복 등을 모두 판매한다. 사진 마뗑킴

‘1000억 브랜드.’ 패션 업계에서 이 말은 단순히 숫자가 아닙니다. 이름을 제대로 알린 히트 상품과 재구매를 하는 충성 고객이 있고, 쉽게 살 수 있는 유통 채널이 확보됐다는, 일종의 ‘성공 인증’이죠. 대기업이 신규 브랜드를 내놓고 나서 1000억원 매출 달성에 목숨을 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점에서 패션 브랜드 ‘마뗑킴(Matin Kim)’의 고속 성장은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개인이 블로그에서 선보인 지 5년 만인 지난해 1000억, 올해는 상반기에만 700억을 돌파하며 1800억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오프라인 확장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브랜드는 지난 15일에는 서울 명동에 3층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고요.
이런 폭풍 성장 뒤에는 2021년 마뗑킴을 투자·인수한 ‘하고하우스’가 있습니다. 플랫폼 사업과 함께 ‘디자이너 브랜드 인큐베이터’를 내세우는 패션 기업입니다.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온라인 기반의 브랜드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지금까지 투자한 브랜드만 33곳. 최근에는 1년 새 매출이 30~50% 늘어나는 또다른 브랜드의 성장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이 사업 모델을 하고하우스가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인큐베이팅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비크닉이 좀더 알아봤습니다.

마뗑킴의 2024 가을 화보. 사진 마뗑킴

마뗑킴의 2024 가을 화보. 사진 마뗑킴

33개 온라인 브랜드 투자…“여성복 시장 바꿔보자”

하고하우스의 시작은 2017년 선보인 온라인 플랫폼 ‘하고(HAGO)’였어요. 당시 패션업계에선 생소했던 펀딩과 큐레이션 중심의 쇼핑을 차별점으로 내세웠죠. “감각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합리적 가격으로 알리고 키워 보자”라는 취지였답니다. 새로운 모델로 시장의 주목을 받을 때쯤, 회사는 사업 방향을 선회합니다. 2020년, 대명화학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게 계기였어요. 대명화학은 업계에서 조용하지만 빠르게 패션 브랜드를 인수·합병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의류사업 법인만 27개, 200여개 브랜드를 전개하는 국내 대형 패션기업의 울타리로 편입된 겁니다.
이후 하고하우스는 온라인 디자이너 브랜드에 공격적인 투자를 펼칩니다. 하고의 플랫폼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호평 받는 브랜드를 선별한 거죠. 21년 한 해에만 마뗑킴·분더캄머·제이청·메종마레·르셉템버·리플레인 등 14곳이고, 이듬해에도 4곳을 더해 여성복 중심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가 됩니다. 현재는 투자 브랜드 외 PB 등을 합쳐 총 42개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하고하우스가 적극적인 투자를 나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성복 시장의 판을 바꿔보자.” DKNY·토미힐피거 등의 국내 유통을 전개했던 SK네트웍스 출신의 홍정우 대표는 대기업 브랜드가 중심인 여성복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때라는걸 감지했어요. 게다가 홍 대표는 ‘스티브J앤요니P’라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해 키워 본 경험도 있었어요. 그가 ‘게임 체인저’로 나선 겁니다.

재무·회계부터 생산·영업까지 전방위 밀착 케어

하고하우스가 브랜드에 ‘투자만’이 아닌 인큐베이팅까지 하는데는 현실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유기천 영업마케팅총괄부문장은 “대부분 감각은 있지만 성장을 위한 비즈니스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00억 안팎까지 만든 브랜드라 해도 일정에 맞춘 생산, 시장이 원하는 상품기획, 오프라인 채널 영업, 유능한 인력 확보 등이 여전히 어렵다는 거죠. 때로는 적정 마진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주먹구구이기도 하고요. 빈틈이 있으면 성장이 더뎌지는 법. 하고하우스가 “실패한 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전방위 지원에 나서게 됐답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팅의 시작은 ‘기초체력’ 파악입니다. 점검 후 20여 명의 내부 패션 전문가들이 브랜드를 밀착 케어합니다. 마뗑킴의 경우 대기업 출신의 COO가 1년을 아예 브랜드로 출근해 운영 시스템을 만드는가 하면, 연륜 있는 MD가 붙어 상의부터 액세서리까지 스타일이 완성될 수 있도록 상품을 기획했어요. 또 큰 생산 공장을 찾아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만들었고요.
오프라인 전략도 남달랐습니다. 브랜드 성장에 백화점 유통을 필수로 봤지만, 대신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지방을 공략했습니다. 첫 매장을 대구로 잡았고, 이후에도 전주·광주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했고요. 유 부문장은 “그럴싸한 지역보다 알짜 고객이 있는 곳을 실리적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영캐주얼·컨템포러리·수입브랜드 같은 기존 백화점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고객과 가장 어울릴 수 있는 층에 매장을 여는 것도 우리만의 전략”이라고 밝혔습니다.

마뗑킴 기세 이어갈 브랜드들 이미 성장 중

하고하우스 투자 브랜드 중 하나인 드파운드 화보 컷. 2030 타깃의 편안한 라이프 웨어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올해 5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 사진 드파운드

하고하우스 투자 브랜드 중 하나인 드파운드 화보 컷. 2030 타깃의 편안한 라이프 웨어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올해 5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 사진 드파운드

최근 하고하우스가 투자한 ‘드파운드’‘유니폼브릿지’도 전방위 인큐베이팅을 통해 마뗑킴 못잖은 성장세를 보이는 브랜드입니다. “조용히, 하지만 오래 갈 수 있는 잠재력이 돋보인다”는 이유로 투자받은 두 브랜드의 지난해 매출 300억원 대, 올해는 500억원 대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드파운드의 경우, 초반 4개월간 하고하우스 인력 파견으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물량 계획, 상품 기획의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조현수 드파운드 공동대표는 가장 크게 덕을 본 부분으로 물류와 인력을 꼽았습니다. “재고 관리나 배송처럼 B2B가 필요한 부분이 해결됐고, 무엇보다 업무 이해도가 높은 좋은 직원들을 뽑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어요. 유니폼브릿지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 확장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백화점 영업과 미팅하는 법부터 매장 디스플레이, 동선 관리까지 하고하우스가 동반자 역할을 해 줬다”는 게 김태희 대표의 설명입니다. 그는 사소한 것도 질문할 일이 많아지면서 아예 사무실을 서울 성수에서 하고하우스가 있는 경기도 판교로 옮겼답니다.

2023년 하고하우스 투자를 받은 유니폼브릿지. 클래식과 모던을 잇는 빈티지 캐주얼 브랜드로 지난해 오프라인에 진출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유니폼브릿지

2023년 하고하우스 투자를 받은 유니폼브릿지. 클래식과 모던을 잇는 빈티지 캐주얼 브랜드로 지난해 오프라인에 진출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유니폼브릿지

사실 규모 있는 기업이 브랜드를 투자·인수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하고하우스가 선보이는 지원 역시 대기업이 훨씬 더 갖추고 있는 전문 시스템이고요. 그럼에도 왜 쉽게 따라할 수 없고, 성공으로 이어지기 힘들까요.
유 부문장은 이를 ‘관계성의 문제’로 설명했습니다. 투자자라는 이유로 ‘우리가 샀으니 우리 식대로 키우겠다’라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역량은 그 대표가 가진 캐릭터가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순히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이 캐릭터를 얼마나 존중하고 유지해 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브랜드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싶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며 합을 맞추는 건 기본. 모델을 누구 쓰고, 매장을 어디에 낼 것인가까지 세세히 고민을 나눠야 하는데, 분업과 효율성, 다단계 보고를 중심으로 일하는 큰 조직에서는 이런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이 사업을 할 수 있는 데는 우리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하고하우스가 1~2년 내 브랜드 전체 매출 3000억 돌파, 향후 1조 이상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잡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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