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홀로 창밖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협회 회원일 가능성이 있다. 구름 감상 협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라니, 재미없어" "구름은 억울하다" 등이 이 협회의 선언문 중 일부다. "뜬구름 잡는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영국인 개빈 프레터피니(56)가 2005년 설립한 이 협회는 한국을 포함한 120여 개국에 5만30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프레터피니의 구름 예찬은 세계적 강연 플랫폼인 테드(TED)에서 13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열성 회원들은 협회 구름 배지를 장례식에도 장식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라고 한다. 협회 로고를 타투로 팔에 새긴 이도 있다. 그가 펴낸 『날마다 구름 한 점』『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김영사)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구름 애호가들의 필독서가 됐다. 『구름관찰자를 위한 그림책』도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신간 제목과 같은 전시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21일까지 진행된다. 그를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의 구름 전망 좋은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구름 덕후'라 할만한 그는 "구름의 덧없는 아름다움은 인생과 닮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 첫 방한인데. 서울의 구름 소감은.
- "(통창밖을 가리키며) 저기 저 새털구름 보이나? 그 옆에 적란운도 보이는데, 살짝 흐릿해 보이는 까닭은 습도 때문이다. 모든 구름은 제각기 아름답다. 똑같은 구름은 없다. 서울의 구름 역시 그렇다."
- 왜 구름인가.
- "(창밖을 또 가리키며) 아, 새털구름이 벌써 사라졌다. 모든 구름은 곧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다. 미움받는 존재인 먹구름도 사실 비를 내리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덧없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지구에 사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기쁨이라는 것도 소중하지 않은가."
- 협회까지 만든 이유는.
- "다들 파란 하늘만 예찬하는데, 구름이 좀 억울하지 않겠나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어봤는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뜨겁게 호응해서 나도 놀랐다. 생각해보면 구름은 성인이 된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뭉게구름 위에 누워보고 싶다거나, 솜사탕 같은 구름을 만져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다들 하지 않나. 구름은 그대로 하늘 위에 있는데, 어른이 된 우리가 그 구름을 잊고 있을 뿐이다. 구름을 즐길 줄 안다는 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 무슨 말인가.
- "시시각각 다른 구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눈에 담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는 순간,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실존하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디지털 시대, 우리는 사실 쓸데없이 바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에서 잠시 떨어져서, 나를 둘러싼 공평한 행복,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을 즐기자는 것이다."
- 구름도 종류가 많은데.
- "크게 10가지 종류가 있고, 세분화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역사적으로도 구름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다. 고대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도 '구름'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바실리카 대성당 벽화를 보면 종종 미확인비행물체(UFO)로 오인되던 렌즈구름을 그려놓았다.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도 구름 예찬론자였다. 중국의 수묵화에도 구름은 주요 모티프다."
- 한국 수묵화에도 구름은 자주 등장한다.
- "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한국에도 협회 회원들이 꽤 많이 있다. 우린 시공을 초월해 구름이라는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사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매일 보면 질릴 수밖에 없다. 파란 하늘은 어찌 보면 우리가 꾸는 허황한 꿈 아닐까. 진짜로 원하지 않으면서 꾸는 꿈. 구름은 우리에게 현실이고, 일상이다. 그런 구름을 아낄 줄 아는 건, 삶을 100%로 살아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