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단식 리허설도 했었다"…잔칫상 뒤엎은 체육회 '거짓 해명'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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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3일 인천공항 2터미널 그레이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파리올림픽 해단식. 대한체육회의 갑작스런 취소 결정과 함께 무산됐다. 사진은 관계자와 보도진이 그레이트홀에서 대기하는 모습. 송지훈 기자

당초 13일 인천공항 2터미널 그레이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파리올림픽 해단식. 대한체육회의 갑작스런 취소 결정과 함께 무산됐다. 사진은 관계자와 보도진이 그레이트홀에서 대기하는 모습. 송지훈 기자

파리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대한체육회가 사실과 동떨어진 해명자료를 내놓아 또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체육회는 지난 13일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 50여 명이 귀국한 직후 해단식을 열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 2터미널 입국장 인근 그레이트홀에서 행사를 개최한다”고 사전 공지했다. 취재진은 물론, 체육회의 연락을 받은 양궁·탁구·유도·수영·사격 등등 여러 종목 단체 관계자들, 먼저 귀국한 일부 선수들이 행사장 관객석에 자리를 잡고 선수단 입장을 기다렸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도 행사 참여를 위해 현장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예고한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선수단과 함께 입국장에 들어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취재진 앞에서 미리 준비한 소감문을 낭독한 뒤 정강선 선수단장으로부터 태극기를 건네받아 흔든 게 전부였다. 이어 체육회 관계자들이 선수단 해산을 통보했고, 선수들은 제대로 된 환영과 축하 인사를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미리 준비한 행사를 사전 안내 없이 취소한 체육회의 일방통행식 결정에 대해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약식 해단식을 강행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김경록 기자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약식 해단식을 강행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김경록 기자

체육회는 하루 뒤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파리올림픽 해단식 관련 대한체육회 입장’이라는 제목의 A4 용지 3장짜리 문서를 통해 당일 상황을 설명했다. 해당 자료에서 체육회는 “당초 행사 장소를 인천공항 제2터미널 1층 입국장으로 명기한 협조 공문을 공항공사에 보낸 바 있다”면서 “최근 수 년 동안 국제종합경기대회 귀국 관련 행사는 입국장에서 개최된 점을 고려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레이트홀을 이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레이트홀은) 인천공항에서 제안한 별도 행사 장소”라면서 “선수단의 장기간 비행시간, 항공 연착 및 수화물 수취 시간 소요 등으로 인한 선수단의 피로와 행사 장소 이동에 따른 혼잡, 안전 등을 고려해 부득이하게 당초 계획한 입국장에서 행사를 축소하여 진행한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와 함께 입국장에서 해단식을 개최하겠다는 취지로 공항공사에 보낸 행사 요청 공문을 첨부했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라는 지적이다. 당초 체육회가 입국장에서 해단식을 진행하는 것으로 기획해 공항공사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건 맞다. 하지만 입국장 혼잡 및 안전사고를 우려해 그레이트홀로 장소를 옮길 것을 제안한 공항공사 측의 요구를 최종 수락한 것도 체육회였다. 실제로 입국장에 선수들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그레이트홀에서는 여러 명의 체육회 직원들이 행사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미리 섭외한 진행자를 중심으로 리허설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이기흥 체육회장(왼쪽)을 격려하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 당초 해단식 장소인 그레이트홀에 대기하던 그는 하마터면 선수단과 마주치지 못할 뻔 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이기흥 체육회장(왼쪽)을 격려하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 당초 해단식 장소인 그레이트홀에 대기하던 그는 하마터면 선수단과 마주치지 못할 뻔 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회가 첨부 자료로 함께 제시한 해단식 식순 또한 그레이트홀에서 준비 중이던 실제 내용과 달랐다. 체육회가 제공한 자료에는 체육회장이 소감 발표를 한 뒤 선수단장이 답사를 하는 순서로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문체부 장관이 환영사를 한 뒤 체육회장이 답사를 하고 선수단장이 경과 보고를 하는 순서로 리허설을 진행했다.      

“최근 수 년 동안 국제종합경기대회 귀국 관련 행사는 입국장에서 개최했다”는 체육회의 해명 또한 이전 올림픽 사례와 맞지 않다. 코로나19 기간 중에 열린 도쿄올림픽의 경우 바이러스 전파 우려 때문에 선수촌 숙소동에서 해단식을 하고 인천공항에서는 간단한 환영 행사만 개최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치른 2012년 런던 대회와 2016년 리우 대회 직후엔 인천공항 1터미널에 위치한 밀레니엄홀에서 성대한 해단식을 진행했다. 특히나 이번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당초 금메달 5~6개에 그칠 것이라던 전망을 뛰어넘어 금메달 13개를 획득하며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을 냈다. 준비된 장소에서 제대로 축하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체육계 관계자는 “(당초 입국장 해단식을 원한) 이기흥 회장이 입국 직후 그레이트홀에서 해단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 안다”면서 “이후 ‘해단식은 5분이면 충분하다. 짐도 많으니 그냥 입국장에서 끝내겠다. 선수단에 같은 내용으로 공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이어 “당초 그레이트홀에서 대기 중이던 유인촌 장관과 장미란 차관이 미리 입국장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선수들 얼굴도 보지 못 한 채 돌아설 뻔 했다”고 덧붙였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해단식 취소 결정으로 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체육계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해단식 취소 결정으로 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해당 관계자는 “해단식을 기획하고 준비한 것, 그레이트홀 사용에 최종 동의한 것, 공항공사와 합의한 내용을 무시하고 입국장에서 행사를 강행한 것 모두가 체육회의 결정”이라면서 “선수의 안전을 고려해 입국장 대신 별도의 해단식 장소를 잡은 것인데, ‘선수 안전’을 핑계로 멋대로 취소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기흥 회장은 해단식을 약식으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 “선수들의 피로도와 안전을 생각해 내린 결정일 뿐, 문체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체육계 내부에서는 올림픽 종료를 기점으로 체육회가 문체부에 반기를 든 것이며 해단식 해프닝은 일종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문체부가 종목단체 예산 배분 방식 변경, 단체장 임기 제한 규정 유지, 국가대표 훈련비 배분 개선 등 체육회의 권한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줄줄이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귀국 직후 선수단기 반납에 앞서 흔드는 정강선 선수단장. 연합뉴스

귀국 직후 선수단기 반납에 앞서 흔드는 정강선 선수단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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