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오징어까지 파고든 일본…지금 독도가 위험합니다" [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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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복절…10년째 독도 연구 김윤배 대장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동해의 오아시스’라고 불린다. 물 맑은 동해는 해양생태학적으로 사막과 비슷한데, 그나마 독도와 울릉도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울릉도에는 생태계 현장을 연구하는 연구기지가 있다. 2014년 설립한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다. 기지 설립 때부터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윤배(54) 대장을 울릉도에서 만나 독도까지 동행했다. 독도와 울릉도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위한 일본의 연구가 독도를 넘어 울릉도까지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독도연구 최전방에 서 있는 김 대장의 첫마디가 다급했다. “독도가 위험합니다.”

독도 서도의 모습. 독도는 동도와 서도 및 89개의 부속도서로 이뤄진 섬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도 서도의 모습. 독도는 동도와 서도 및 89개의 부속도서로 이뤄진 섬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5~6일 김윤배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대장을 만났을 때 울릉도에서는 여름 축제가 한창이었다. 일명 ‘오징어 축제’였지만 실은 ‘오징어가 없는 오징어 축제’였다. 여름밤이면 울릉도 앞바다를 빼곡히 메우던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온데간데없다. 이맘때면 500~600척에 달하던 배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뜨거워진 바다 탓이다. 온도가 섭씨 20도가 넘는 이른바 바다의 여름이 과거엔 7~8월이었다면, 지금은 6~11월까지 지속되고 있다. 김 대장은 “울릉도와 독도의 표층수온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아열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배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대장과 독도를 동행했다. 그는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윤배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대장과 독도를 동행했다. 그는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 그런가.
“남쪽 대한해협에서 들어오는 대마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이 울릉도와 독도 인근이다. 과거 냉·온탕이 만나던 곳이 지금은 난류가 세서 온탕이 됐다. 냉·온탕이 만나야 오징어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풍성한데 그 전선이 북으로 올라갔다. 겨울에야 다시 내려온다. 그런데 겨울에는 이 일대 바다가 풍랑으로 뒤집혀 오징어배를 띄울 수 없다. 오징어가 없는 게 아니라 못 잡게 된 것이다. 또 동중국해에 오징어가 알을 낳고 북으로 이동하는데, 바다가 뜨거워 치어 생존 확률도 줄었다. 결국 기후변화로 오징어 어장이 이동하고, 자원량도 감소했다.”
어종도 달라졌을 것 같다.
“제주도에 있던 자리돔이 주 어종이 됐다. 울릉도·독도 심해에서 잡히던 대게 서식에도 영향이 있다. 대게는 오징어를 먹고 산다. 단년생인 오징어가 죽으면 가라앉는데 그 사체를 먹는 거다. 결국 동해의 붉은대게 자원량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 5일 울릉도 북면에 있는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에서 김윤배 대장을 만났다. 그의 책상에는 독도 관련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5일 울릉도 북면에 있는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에서 김윤배 대장을 만났다. 그의 책상에는 독도 관련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해 해류 전문가인 김 대장은 2014년 기지 설립 때부터 울릉도에서 살며 현장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주로 울릉도 연안이나 독도로 연구선을 띄워 해양 생태계를 살핀다. 일본의 도발은 그에게 일상이다. 독도 인근에 연구선을 띄우면 일본 순시선이 득달같이 달려와 경고방송을 한다고 한다. 진로를 방해하는 일도 있다. 최근 들어 횟수가 잦아져 1년에 100여 차례에 달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하는 것은 일본의 집요한 연구다. 독도 연구의 최전방에서 김 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독도를 향한 국민의 마음은 뜨겁지만, 정작 독도 앞바다는 방문객이 버린 태극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최근 연구소로 일본 돗토리현(縣)의 젊은 연구자들이 왔다. 울릉도 오징어 연구를 하고 있더라.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독도와 울릉도를 드나들며 오징어를 잡은 기록 연구다.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이라는 것이 한국의 논리다.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를 분리하고 일본 본토와 독도가 더 가깝다고 홍보하는데, 이제는 우리 논리까지 차용하고 나섰다. 일본 사람들이 울릉도를 오가며 독도도 관리했다는 거다. 과거에는 울릉도가 고향이라는 2세들의 친목단체도 만들어서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 연구를 반박하기 위해 울릉도 연구까지 확장하고 있다.”
독도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자원 때문이다. 섬나라인 일본은 늘 자원이 부족하다. 독도 영유권을 차지하면 주변 수역이 함께 넘어간다. 그 면적이 6만㎢다. 대한민국 면적이 10만㎢이니 엄청난 면적이다. 일본은 1930년대에도 동해에 수백 척의 배를 띄워 정어리 자원을 파악하기도 했다.”

PC통신이 맺어준 독도와의 인연

천리안 동호회 통해 ‘독도 공부’ 시작
10년 전 울릉도로…생태계 본격 연구
“일본 순시선 경고방송 듣는 게 일상”

2008년 고 조오련씨(가운데)가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할 때도 김 대장(오른쪽)은 그 곁을 지켰다. [사진 김윤배]

2008년 고 조오련씨(가운데)가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할 때도 김 대장(오른쪽)은 그 곁을 지켰다. [사진 김윤배]

한국의 연구는 어떤가.
“우리는 거꾸로 독도만 보고 있다. 외눈박이 연구다. 울릉도는 독도에 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로 생각하는데,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보고 식물·지질학적 관계, 향토사 등을 연결해 가야 한다. 과거 불법 벌목이나 강치(바다사자) 등을 잡기 위해 울릉도·독도를 드나들었던 일본과 달리 우리가 거주했던 기록이 별로 없다. 조선 태종 때부터 400년 넘게 울릉도를 비롯한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한 ‘해금(海禁)정책’ 탓이다. 왜구들이 섬에 침략해 동해안으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훔쳐갈 게 없도록 아예 비워 놓은 것이다. 그런데 비공식적인 거주 기록은 많다.”
어떤 기록들인가.
“정약용 선생이 1801년부터 18년간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때 썼던 시 ‘탐진어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치범동향울릉행(治帆東向鬱陵行)’, 돛을 달고 동쪽 울릉도로 간다는 내용이다. 조선 고종 때 일본인이 울릉도에서 하도 불법 벌목을 해서 검찰사를 보내 살펴보니 200여 명의 사람 중에 140명이 조선인이었고, 이 중 80%(115명)가 고흥·여수 등 호남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울릉도 지명 곳곳에 전라도 방언이 많다.
“맞다. 독도는 돌을 독으로 썼던 호남 방언에서 비롯됐다. 돌섬이라는 의미다. 울릉도에 오면 배 한 척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풍부했다. 전라도 뱃사람들이 울릉도에 왔다가 독도도 갔다. 이런 역사는 독도만 보면 보이지 않는다. 울릉도와 호남, 동해안 네트워크 등을 두루 봐야 한다. 학제 간 융합연구가 정말 필요하다. 독도만 바라보는 것은 일본이 바라는 연구다.”

엉성한 한국 vs 치밀한 일본

공문서관리법 ‘10년 보관 후 폐기’ 규정
소중한 사료들 구전만으로 전해져
일본은 ‘고향 울릉도’ 친목회 만들어

김 대장은 1998년 PC통신 천리안에서 ‘독도사랑동호회’를 처음 만들었다. 부산역에서 홍보하던 모습. [사진 김윤배]

김 대장은 1998년 PC통신 천리안에서 ‘독도사랑동호회’를 처음 만들었다. 부산역에서 홍보하던 모습. [사진 김윤배]

독도 연구는 자료 싸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기록이 많지 않다. 그나마 있던 기록도 파기되고 없다. 1960년대 제주 해녀들이 독도 식수원인 물골 공사를 위해 봉사활동을 했던 기록도 공식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독도 물골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독도 침탈에 맞서 울릉도 주민들로 결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최초 주둔지로 활용했던 곳이다. 울릉군청 관계자는 “공문서관리법에 따라 공사 내역 등 독도 관련 자료를 10년간 보관하고 폐기했다”며 “2010년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역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계속 보관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법에 따라 일괄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광복 이후 독도 관련 자료들이 대다수 파기되고, 이제 구전으로만 전해지니 답답하다”고 했다.

독도 앞바다에 버려진 태극기. 방문객이 사진용으로 들고 왔다 버리고 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도 앞바다에 버려진 태극기. 방문객이 사진용으로 들고 왔다 버리고 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해양대와 부산대(석사)·서울대(박사)를 거치며 동해 해류를 연구했던 김 대장을 울릉도에 자리 잡게 한 것은 ‘부끄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97년도에 지리산 등산을 갔을 때 장터목 산장에서 일본인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독도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러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부터 과거 이야기를 줄줄 읊는데,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밖에 없었어요. 부끄러웠습니다. 하산해서 당시 PC통신인 천리안에 ‘독도사랑동호회’를 만들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호회에서 아내도 만났죠.”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뒤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이에 맞서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건립 계획을 내놨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건립됐고, 김 대장은 연구기지 본부가 있는 울릉도로 곧장 건너왔다. 기지는 현재 해양수산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경북도와 울릉군이 예산 지원을 한다. 인원은 총 17명인데, 연구인력은 박사급 3명을 포함해 총 9명이다. 동해 끝단의 섬 생활은 녹록지 않다. 처음 왔을 때 아내와 세 아이도 함께였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딸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 교육 등의 이유로 가족들은 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고, 지금은 김 대장 홀로 남았다.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섬에서 아이들이 다쳤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얼마 전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스쿠버다이빙 교실을 열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바다가 따뜻해져 어업 환경이 어려워졌다면 해양레저관광이라도 활성화해야겠다 싶어 나섰다. 울릉도의 인프라와 환경이 나아져야 독도도 지킬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현장 연구를 하고자 울릉도에 머물 테니까. 김 대장의 배낭 안에는 벽돌만 한 크기의 무선 급속 충전기가 있다. 현장에 있는 그에게 연구 관련 문의전화가 수시로 오는데, 한 통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해양연구자인 그가 향토사학자, 교육 기획자, 인문사회학자처럼 전방위로 뛰는 이유는 독도 연구는 여러 분야를 엮어야 살기 때문이다.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잇는 독도 연구를 위해 김 대장은 오늘도 현장으로 향한다.

울릉도ㆍ독도 해양연구기지의 연구선인 독도누리호가 독도를 향하고 있다. 낚시배를 빌려 연구하다 지난해에서야 전용 연구선이 마련됐다. 사진 울릉도ㆍ독도 해양연구기지

울릉도ㆍ독도 해양연구기지의 연구선인 독도누리호가 독도를 향하고 있다. 낚시배를 빌려 연구하다 지난해에서야 전용 연구선이 마련됐다. 사진 울릉도ㆍ독도 해양연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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