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떠돌던 대한제국 훈장을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환수했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재학생 이규인(21)씨는 지난 5일 온라인 경매로 ‘훈3등 태극장(太極章)’을 오랜 기다림 끝에 품에 안았다.
1900년 대한제국 훈장조례에 따라 제정된 태극장은 대훈위금척대수장·대훈위서성대수장·대훈위이화대수장 다음의 네 번째 훈격의 훈장이다.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 을사오적 권중현 등 구한말 유명 인사가 받았던 고위 훈장이다.
이씨의 태극장 환수는 지난해 9월로 거슬러간다. 군사 유물을 종종 모으던 이씨는 캐나다 골동품 거래 사이트(e-Medals)를 살피다 깜짝 놀랐다. 보기 드문 100여년 전 대한제국 훈장이 경매에 나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경쟁이 붙어 며칠 만에 1000달러가 넘었다. 대학생으로선 값비싼 유물이어서 참가를 망설였다고 한다.
그때 경매 참여자의 닉네임이 이씨 눈에 들어왔다. 중국인과 일본인으로 추정됐다. 이씨는 “구한말 중국과 일본에 침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100년이 지나서도 외국인에게 문화재를 빼앗긴다는 생각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반쯤은 충동적으로 경매에 뛰어든 이씨는 지난해 10월 49번의 치열한 경쟁 끝에 태극장을 최종 낙찰받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수수료를 합해 5000달러(약 680만원)를 넘었다. 다행히 경매자와 분할결제에 합의할 수 있었다. 이씨는 “문화재를 지켰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돈을 아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했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맸다. 우선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반 갑으로 줄이고 친구들과 술자리도 줄였다. 커피값도 아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난해 10월 25일 1500달러, 올해 3월 27일 1746달러, 지난달 31일 1796달러 세 차례에 걸쳐 5042달러를 모두 지불했다. 한 달에 500달러(68만원)씩 모은 셈이다. 이씨는 “담배를 줄이는 게 가장 어려웠는데 1907년 국채보상운동 당시 금연을 해서 돈을 모은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9일 근현대 군사유물수집가 박종래씨에게서 진품 감정을 받았다. 박씨는 지난 1월 국방부와 협업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태극무공훈장을 맥아더기념관에 74년 만에 전달하는 데 기여한 군사유물 전문가다. 태극장 소장 경험이 있는 박씨는 “오얏꽃 부속품, 수(綬·리본 장식)의 직조 형태와 품질 등을 살펴본 결과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매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훈장류는 보관 상자가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씨의 태극장은 보관 상자까지 있어서 희소성과 경제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군 장교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안보와 보훈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해 3월과 6월 연세대 캠퍼스에서 서해수호의 날과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에게 감사 메시지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대문구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컷오프된 이색 이력도 있다. 이씨는 “과학기술을 엄밀하게 이해하는 정치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태극장 수여자에 대한 전문가 자문과 연구를 거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태극장을 기증할 계획이다. 그는 “100년 넘는 세월을 거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문화재가 잘 보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