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환경은 급변하고 국제 정세는 불안하다. 저성장에 불확실성까지 커지니 기업들은 채용을 주저하거나 아예 사업을 떼어낸다. 그 충격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 전가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4세 미만 청년이 생애 첫 일자리를 얻는데 13.9개월이 걸렸다. 역대 최장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으면 다행인데 어렵사리 얻은 첫 일자리가 기간제이거나 시간제인 경우가 많다. 임시·일용직 비율은 34.4%, 시간제 비율은 18.7%나 된다. 첫 일자리 취업자의 59%가 월 200만원도 받지 못했다. 경제 활동을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20대가 43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4만 명이 늘었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차 심하자
스웨덴, 1951년 연대임금제 도입
대기업은 임금 삭감, 하청은 인상
정년 연장 여론이 비등하지만, 고용 상황이 안 좋은 쪽은 오히려 청년 세대다. 지난 6월에도 60세 이상 고령자 취업자 수는 지난해보다 25만8000명 증가했지만, 20대는 13만5000명 줄었다.
노·사·정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산업 전환, 불공정 격차, 노동의 불안정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산업 전환이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할 문제라면, 불공정한 격차는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문제다. 노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핵심 문제라고 인식한다.
물론 개인의 노력과 성과가 다르니 격차 자체가 문제 될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이 소속 집단에 따라 달라진다면 불합리하다. 그 집단의 내부자냐 아니냐에 따라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면 특권이고 노동지대다. 이를 허물지 않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공허한 구호다.
올해 단체교섭을 맺은 현대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3000만원 정도다. 본인이 원하면 정년퇴직한 뒤 2년간 더 일할 수도 있다. 노사는 성과를 냈고 6년간 파업 없이 교섭도 잘했다.
공교롭게 현대차 노사합의가 있던 날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30원(연봉 2515만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이 중위소득의 60%를 넘는 만큼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고 가산수당도 받지 못한다. 주휴수당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쪼개기 근로계약을 해야 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이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일자리의 85%는 중소기업에 있다. 5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는 800만 명으로 전체의 30%나 된다.
노동계는 노동시장이 너무 유연하다고 지적하고, 경영계는 너무 경직적이라고 반박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때문이다. 한국 노동법제의 경직성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다. 노조 조직률이 46%에 이르는 대기업에서는 지켜지는 편이다. 하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중소 영세업체는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입직과 이직이 잦아 노동법제를 준수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 노동정책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법제를 만들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근로시간 단축과 정년 연장도 대기업 근로자가 혜택을 보고 사업주에게는 부담이다. 결국 이것이 노·정 갈등을 불러온다. 이제는 노사가 풀어나가야 한다.
경사노위 논의에서 노동계는 연대임금 전략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인상,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플랫폼노동 보호 등이 그 방안이다. 경영계는 대기업의 고임금 안정화와 임금 체계 개편을 제안했다. 서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대안들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가길 바란다. 스웨덴은 1951년에 노사 자율로 연대임금제를 도입했다. 대기업 노조가 먼저 임금을 삭감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렸다. 대기업은 절감된 재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중소기업이 임금을 인상하자 한계기업들이 퇴출당했다. 구조조정 된 인력에 대해서는 노·사·정이 함께 대처했다.
물론 스웨덴과 한국의 여건이 다르지만, 노사 자율로 대안을 마련한 점을 배워야 한다. 특히 대기업 노조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일수록 단번에 해결하기 어렵다. 경사노위에서 충분히 논의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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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