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Chef’s Nail’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요리사의 손톱이라니? 레스토랑에서 손톱을 간판으로 내건다는 게 이상해서 다시 보니 ‘Chef’s Nail’이 아니라 ‘Chef’s Note’! 결국 소설 한 편을 쓰게 만든 그 착오와 발견의 순간에 나는 횡단보도 앞에 있었다. 유레카의 단골 장소다.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 신호등의 초록불 만은 아니다. 나를 툭 치고 가는 반짝임을 막을 방법이 없다.
자전거로 이동할 때 횡단보도는 은근히 성가신 장소고, 시간에 쫓기며 걸을 때는 횡단보도가 마치 내 발목을 잡는 그물 같다.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의 이동을 잠시 막는 장소이기 때문에 무언가가 찾아올 틈새가 생긴다. 횡단보도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흐르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다나 마찬가지니까. 그 바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일렁이는 도시의 파도를 바라볼 때, 파도 너머 초록불이 뜨기를 기다릴 때 생각의 부유물이 뒤섞이면서 낯선 무늬를 만들어낸다. ‘가벼운 기다림’이 핵심이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 참아야 한다.
올여름에는 뉴욕과 파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목적으로 거기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랬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두 도시 모두 ‘가벼운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뉴욕 사람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새 없이 건넜고 나도 그 흐름에 휩쓸렸다. 파리에서는 러너가 되었기 때문에 실패. 올해의 목표였던 800m 달리기를 시도한 곳이 파리였는데, 진짜 러너들은 횡단보도 앞에서도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나는(가짜 러너라고 말하진 않겠다) 너무 내려놓았다. 틈새가 아니라 완전한 릴랙스.
틈새를 허락하는 횡단보도는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내 생활 반경 안에 있다. 저 모퉁이를 돌면 만날 표정 없는 횡단보도가 가장 기대할 만하다. 그렇지만 기대하는 티를 내면 영감은 달아나니까, 썸타듯 가볍게!
윤고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