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좌우 깊은 은원…학자 소신, 참으로 무력하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8.14

〈제6부〉 해방정국의 3대 비극

③1948년 제주 4·3사건(상)

지난 4월에 연재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척 긴장했고, 살얼음을 밟는 것 같았다. 틀린 점이나 없는지, 내 글로 말미암아 마음 아파할 사람은 없는지,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일은 없는지….

이번 글에서 특별히 그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제주 4·3사건이야말로 너무 극명하게 좌우가 갈려 대치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한국의 현대사는 은원(恩怨)이 너무 깊다. 어느 편에 설 수도 없다. 학자의 소신이니 역사가의 정론이니 하는 것이 참으로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제주 4·3사건을 쓰려니 그런 감회가 더욱 새록새록하다.

4·3사건 당시 학교 운동장에 모인 제주 주민들. 공산 게릴라들에 부역한 혐의가 있으면 즉각 처형됐다.

4·3사건 당시 학교 운동장에 모인 제주 주민들. 공산 게릴라들에 부역한 혐의가 있으면 즉각 처형됐다.

아름답고 슬픈 제주

언제인가 ‘내가 본 세계의 10대 명승지’라는 주제의 수필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뽑았다.

①50만 년이 걸려 생성되었다는 네바다주 소금 사막에 서서 100년도 못 살며 아웅다웅한 인생의 무상함
②피라미드 앞 나폴레옹이 섰던 자리에서의 망연자실함
③고비 사막의 유성(流星)
④통일을 염원하며 울며 묵주 기도를 드리던 백두산 천지의 부슬비
⑤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마야(Maya) 유적지와 칸쿤(Cancun)의 쪽빛 바다, 그리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전시
⑥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박물관과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유적
⑦바이칼호의 물안개와 자작나무 숲, 그리고 데카브리스트(Dekabrist, 12월혁명당) 볼콘스키(G. Volkonsky) 박물관
⑧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남쪽에 있는 골동품·고서점 도시 스틸워터(Stillwater)의 냇가에 있는 노천 커피집,
⑨일본 교토(京都) 북쪽의 히에이산(比叡山)과 비와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엔랴쿠지(延曆寺)
⑩한라산 1200m 고지의 설화(雪花)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곳은 한라산의 아름다움이다. 세계 10대 절경에 뽑혔다거나 내 나라 땅이라거나 하는 것과 관계없이, 나는 설령 한국인이 아니었더라도 한라산의 설화를 꼽았을 것이다. 이 좁은 땅에 한대(寒帶)부터 아열대기후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라산에 갈 적마다 늘 기쁘고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제주 4·3사건을 쓴 뒤로부터 그렇게 되었다. 더욱이 이산하의 시 ‘한라산’의 다음 구절을 읽을 때면 가슴이 저려온다.

‘한라산’ - 이산하

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 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