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이렇게 잡스럽게 이것저것 많이 하니?” 그런데 전 여러 장르를 넘나들긴 했지만, ‘창작’이라는 한 우물을 팠다고 생각해요. 그걸 깊이 파다 보니 여러 개의 우물이 하나로 이어진 거죠.
‘KUHO’ 디자이너, 서울시무용단 무대 연출, 영화(‘스캔들’ ‘황진이’) 미술감독, 리움미술관 리뉴얼…
모두 ‘정구호’라는 한 사람의 일입니다. ‘N잡러’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인 1992년부터 진정한 N잡러로 활동해온 인물이죠. 선배들은 “잡스럽게 이것저것 한다”고 지적했지만, 그는 발을 들인 모든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자기 존재를 증명해 왔습니다. 여전히 사무실 없이 일하며, 하루 15~16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죠.
올해 59세인 정 디렉터는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깊이 있는 커리어를 만들었을까요? 오래도록 시대 감각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지만 사실은 한 우물만 팠다고 생각한다”는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났습니다.
💬목차
🔹정구호 스타일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
🔹진정한 명품은 '타임리스', 리움미술관 리뉴얼 목표는
🔹“메모 안 한다” 시대 감각 단련한 비결
‘정구호 스타일’, 핵심은 선택과 집중
- 감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 정구호라는 사람을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선생님’은 아직 익숙지 않고요.(웃음) ‘감독’이라고 불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여러 분야에 다 통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요.
-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마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라는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공예 트렌드페어 총감독도 맡았고요. ‘패션 디자이너’로만 정구호를 아는 분들에겐 낯선 행보일 것 같습니다.
사실 패션보다 무대예술 쪽을 더 먼저 시작했어요. 1992~93년부터였죠.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는데요, 이때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 공부하던 안은미·안성수 무용가 등을 만나게 됐어요. 이때 무대디자인이나 의상에 도움을 주며 자연스럽게 공연예술을 가까이하게 됐죠. 제가 시작했다기보다 기회가 먼저 왔고, 그걸 잡았단 말이 맞을 것 같아요.
- 기회가 왔다고 다 해내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 기획 부분은 제 관점에서 풀어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으니 브랜드 메시지나 캠페인 기획의 관점을 응용해 작업해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