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마이동풍(馬耳東風)과 이백(李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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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대의 시인이자 문학가 이백(李白).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꼽힌다. 시각중국(視覺中國)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자 문학가 이백(李白).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꼽힌다. 시각중국(視覺中國)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부친의 구체적 신분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부친은 젊은 시절에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에서 중국 쓰촨(四川) 지역으로 이주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벼슬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물로 추측한다. 이백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는지, 자신의 부친에 대해서는 직접적 기록이나 언급을 평생 거의 하지 않았다.

이번 사자성어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앞의 두 글자 ‘마이’는 ‘말의 귀’라는 뜻이다. ‘동풍’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훈훈한 봄바람’을 뜻한다. 동풍사마이(東風射馬耳). ‘동풍이 말의 귓가에 닿아도 순식간에 스쳐 가고 만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시를 써도 세상 사람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라고, 당시 세태를 동료 시인과 더불어 개탄하는 이백의 시구(詩句) 가운데 등장하는 5글자다. 이 5글자에서 가운데 동사 ‘사(射)’가 생략되고 ‘동풍마이’로 쓰이다가, 앞뒤 순서가 바뀐 ‘마이동풍’으로 차츰 굳어졌다. ‘좋은 충고를 해도 그 내용을 귀담아듣지 않음’을 비유할 때 주로 쓰인다.

이백 모친은 밝게 빛나던 금성(金星)이 자신의 품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꿨다. 이백의 자(字) 태백(太白)은 바로 이 태몽에 뿌리를 둔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달에 대한 시’를 잘 짓고 총명했다. 하지만 이백의 부친이 사회적으로 뿌리가 약한 아웃사이더였기에 이백도 성장기에 당연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벼슬에 뜻을 두고 산속에까지 들어가서 학습하기도 했으나, 사춘기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낭만적 기질을 타고난 이백은 뛰어난 감수성과 문학적 재능 덕에 차츰 수도 장안(長安)에서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애주가(愛酒家)였던 젊은 이백을 장안에서 맨 처음 제대로 알아본 이는 당시 고관 벼슬을 하던 ‘술고래’ 원로 시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이었다. 천상적선인(天上謫仙人). 그는 이백을 이렇게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신선’으로까지 호평했다.

이백은 나이 42세에 하지장 등의 추천에 의해 양귀비에 빠져있던 현종(玄宗, 685-762)의 눈에 들 수 있었다. 현종은 그에게 특별히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벼슬을 주며 가까이 두었다. 각종 행사나 연회에서 시를 짓는 것이 그의 주된 직무였다. 하지만 환관 고력사(高力士)와 양귀비의 끊임없는 모함과 자신의 과음으로 인한 근무 태만으로 3년도 채 못되어 현종의 총애와 관직을 모두 잃었다.

이후 그의 나이 55세에 ‘안녹산의 난’으로 인해 중국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고, 이백은 더욱 곤궁한 처지가 되었다. 막료(幕僚) 등 임시직을 맡거나 자기 추천서를 쓰기도 하며, 각지를 유랑했다. 지방 현령(縣令) 직책을 가진 친척의 집에서 62세에 병사했다.

중년 이후부터 추포가(秋浦歌) 시리즈 17수(首) 등 실로 주옥같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요즘 기준으로, 이백의 시풍은 대체로 낭만주의로 분류될 수 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산중문답(山中問答)’ 등 요즘에도 애송되는 그의 시는 그 제목만 들어도 벌써 술에 취한 것처럼 시흥(詩興)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인류 문명이 존재하는 한, 시공을 초월해 그는 ‘달과 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사(人生事)’를 정형시(詩) 형식으로 빚어낸 자유로운 영혼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과학 문명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모두의 귀를 의심케 하는 ‘충고 무시’와 동문서답 에피소드들이 각국 주류 정치권에 늘고 있다. 솔직히 크게 당혹스럽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마음까지 다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이백은 ‘동풍사마이’, 앞에 소개된 이 5글자로 세태를 꼬집는다. ‘그래, 귀담아듣지 마라. 너희만 손해지, 뭐’, 그의 이런 심정도 우리가 조금 느낄 수 있다. 사실 때론 충고도 아깝다. 마이동풍은 대우탄금(對牛彈琴)이나 우이독경(牛耳讀經)과 서로 의미가 통한다. 당연히 ‘소나 말’, 이야기 아니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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