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보내는 저녁은 더디고도 빠르게 흐릅니다. 밥 해주랴, 놀아주랴, 숙제 봐주랴 할 일은 쌓였는데 아이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죠. 겨우 아이를 재우고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분명 최선을 다해 치열한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아이에게 잔소리한 기억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고요.
자녀 교육 멘토로 활동하는 김연수 작가는 저녁시간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요. 일상에 규칙이 생기면 짧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서 육아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겁니다. 김 작가와 선보이는 칼럼 ‘루틴으로 크는 아이’, 이번 화에서는 우리 집 상황에 맞게 저녁 루틴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육아가 힘들다면 루틴 점검부터
루틴을 만들면 육아가 편해집니다. 매일 지켜야 하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있으면 아이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덕분에 양육자에게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는 일이 크게 줄어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1년가량 저에게 코칭을 받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지난 1월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있던 날, 아이의 친구가 말레이시아와 대한민국의 축구 경기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하는 경기였죠. 갑작스러운 친구의 제안에 아이는 잠시 고민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9시에 자야 해. 다음에 같이 보자.”
옆에서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양육자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친구와 축구를 보고 늦게 자겠다고 조르는 통에 실랑이가 벌어졌을 일이기 때문이죠. 1년간 꾸준히 루틴을 지킨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상의 기준(9시 취침)을 떠올리고, 루틴을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늦잠, 피곤함 등)을 예측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습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죠. 이게 바로 루틴의 힘이에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유독 힘들게 느껴진다면 먼저 가족의 일상을 돌아보세요. 식사 시간, 공부 시간, 잠자는 시간 등 정해진 루틴이 없는 게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래의 표를 보고 우리 가족의 루틴을 점검해 볼까요? 해당하는 문항에 O를 표시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