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가 귀화를 선택한 16년 전만해도 귀화 선수를 부정적으로 봤어요. 이제 한국인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따내 스승으로서 기쁩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 대표팀 전지희(32·미래에셋증권)가 10일(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에서 독일의 노장 샨 샤오나(41)를 게임 스코어 3대 0으로 완파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동메달) 이후 16년 만에 한국이 단체전 동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전지희가 중국 청소년 대표 출신 ‘텐민웨이’에서 대한민국 탁구 동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배경엔 전 국가대표팀 감독 김형석(62) 화성시청 감독이 있었다. 김 감독은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경기 후 지희가 고마웠다고 하더라”며 “나는 해준 게 없다. 다 지희가 잘한 거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8년 16살 전지희를 처음 본 순간 마음에 들어 ‘귀화하게 해야겠다’며 영입제안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서울시청 감독이었다. 전지희는 왼손잡이라는 특수성과 실력, 무엇보다 탁구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러나 당시 귀화 선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토종 한국인이 아니다” “곧 본국으로 돌아갈 것” 등의 이유였다. 김 감독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전지희의 귀화를 주장했다. 김 감독은 “당시 지희는 탁구밖에 모르는 소녀였다”며 “한국에 와서 10일 정도 전지훈련을 했는데 (전지희의) 열정과 욕심이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전지희도 귀화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김 감독은 2008년부터 귀화 절차가 마무리된 2011년까지 연습생 신분의 전지희를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심양면 도왔다. 포스코에너지 여자 탁구단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 감독은 2011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전지희를 곧장 영입했다.
전지희는 귀화 선수라는 이유로 규제에 묶여 3년간 국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태극마크를 꿈꾸던 전지희는 실망에 빠질 법도 했지만 대신 연습에 매진했다는 게 김 감독 설명이다. 김 감독은 “자발적인 개인 훈련의 양이 지희는 다른 선수의 2배였다. 완전히 연습벌레”라고 회상했다.
전지희는 2012년~2013년 국내 대회에서 1·2등에 올랐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를 발탁한 건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함께 맡던 김 감독이었다. 전지희는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김 감독은 “지희가 난관이었던 혼합 복식 8강 한일전에서 맹활약을 펼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며 “인천 아시안게임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희랑 함께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과 전지희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국가대표 감독‧선수로 손발을 맞췄다. 당시 전지희가 컨디션 난조를 보였지만 제 몫 이상을 해 줬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밝고 긍정적인 친구라 팀원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다”며 “이번 동메달도 지희가 동생들을 잘 이끌어서 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승과 제자는 이제 프로세계에서 상대편으로 마주한다. 김 감독은 화성시청으로, 전지희는 미래에셋으로 팀을 옮겼다. 그런데도 김 감독과 전지희는 종종 연락하거나 만나면 반갑게 대화한다. 김 감독은 “올해 지희에게 ‘더 오랫동안 탁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앞으로 지희가 무엇을 하든 응원할 것이고, (지희는) 잘해낼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전지희 외에도 중국 선수 귀화를 도와 한국에 메달을 안겨준 경험이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당예서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석하정이 김 감독의 제자다. 김 감독은 “과거보다 귀화 선수에 대한 시선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다”며 “귀화 선수를 포용하는 제도와 문화가 더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