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이념갈등에 관한 조사 결과가 관심을 끌었다. ‘사회통합 실태조사 및 대응방안(X)’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변했다. 청년은 51.8%가, 중장년은 56.6%가, 노년은 68.6%가 그렇다고 응답한 세대별 차이도 주목할 만했다. 더하여, 응답자의 33.0%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지인과의 술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71.4%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할 의향이 없다고 답변했다. 조사 결과는 이념갈등이 이제 일상 및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념갈등은 가치·이익 복합 갈등
연애·결혼까지 영향 미치는 현실
정당과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
조정자로서 정치 역할 되찾아야
그렇다면 전반적인 이념 구도는 어떨까. 한국행정연구원이 3월에 발표한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수, 중도, 진보의 비중은 각각 29.9%, 46.7%, 23.4%였다. 중도가 상당히 두터운 모습이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이념갈등의 정도에 대한 응답은 ‘심하다’가 82.9%(‘약간 심하다’: 36.3%, ‘매우 심하다’: 46.6%)를 기록했다. 빈부갈등(76.1%), 노사갈등(68.9%), 세대갈등(55.2%), 젠더갈등(42.2%)과 비교할 때, 이념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이념갈등은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맞서는 모습인 셈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중도가 절반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왜 국민 다수는 이념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걸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이념갈등은 ‘복합 갈등’이다. 복합 갈등이란 가치 갈등이자 이익 갈등이라는 의미다. 이념은 가치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 ‘드러난 가치’는 가치대로 맞서고, ‘숨겨진 이익’은 이익대로 대결하는 게 이념 갈등이다.
둘째, 정치제도로부터의 영향이다.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치갈등에 대해 우리나라 응답자들이 심각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90%(‘심각’: 40%, ‘매우 심각’: 50%)였다. 미국은 90%로 공동 1위였고, 프랑스가 65%, 독일이 56%, 영국이 52%를 기록했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정치갈등의 심각성이 낮은 반면,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높다. 대통령제의 고유한 승자독식 경향이 정치갈등은 물론 이념갈등을 부추겨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정치 세력의 ‘갈라치기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21세기에 들어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불확실한 지지층을 염두에 둔 중도 통합 전략보다 충성스러운 지지층을 최대 동원할 수 있는 갈라치기 전략이 우선돼 왔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에서는 상당한 수익을 보장하는 강성 갈라치기 플랫폼들이 번성해 왔다. 갈라치기 전략이 상대 세력에 대한 적대와 증오의 감정을 선동함으로써 이념갈등은 물론 정치 양극화를 강화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시대 40년에 다가서는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이념 구도의 새로운 경향은 두 가지다. 먼저, 이념갈등이 진영에서 개인으로 확산돼 왔다. ‘진영적 사유의 일상화’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다. 앞서 인용한 연애와 결혼에 미치는 이념갈등은 단적인 사례다. 연애, 결혼과 같은 친밀성에 이념, 가치가 중시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라는 ‘두 국민’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침입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적잖이 쓸쓸하다.
또한, ‘분배 정치’ 못지않게 ‘인정 정치’의 영향력이 커져 왔다.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때 분노를 느끼고, 그 정체성에 대한 인정 욕구가 분출한다. 7080세대 다수는 가난에서 벗어난 산업화에 자신의 젊음을 바쳤다고 생각하는 반면, 4050세대 다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한 민주화에 자신의 청춘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삶에 각인된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적대적 이념갈등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념갈등의 완화 방안은 여럿이다. 이념 논쟁에서 상대방에 최대한 관용의 태도를 견지하고, ‘이중 잣대’를 넘어서 상대 비판과 자기비판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내각제 개헌을 국민 다수가 거부한다면, ‘대통령제의 권위주의화’를 저지할 제도 개혁을 강구해야 한다. 공론장은 자신의 공공적 특성을 고려해 이념 논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시민사회는 적대와 증오를 넘어선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과 정부를 포함한 정치사회다. 끝없이 다원화하는 이 21세기적 질서 아래 사회통합을 일방적으로 호명하고 강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정치사회마저 이념 갈등의 ‘조정자’가 아닌 ‘조장자’의 역할을 떠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정치가 갈등의 조장자를 넘어선 통합의 조정자가 되길 바라는 나의 소망이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사회의 자기 혁신이야말로 사회통합의 출발점이라고 나는 여전히 굳게 믿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