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원(휴민트)들은 우리가 자신을 속이는지 귀신같이 알아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20년 차 전직 국가정보원 베테랑 요원 제임스 한(전 국정원 3급 부이사관·현 위즈노트에이아이(주) 대표)은 얼마 전까지 ‘정보 전쟁’의 일선에서 활약했다. 누군가의 정보를 획득하는 임무를 숨 쉬듯 했을 그는 인터뷰에서 이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정보원 확보가 어렵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은 정보원을 쉽게 속였다는 얘기일까.
전도유망한 요원으로 평가받던 한 대표는 “퇴사율 0.01%”인 국정원을 비교적 최근에 그만뒀다. 그 이유는 뭘까.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한 대표는 신원을 감추고 사는 국정원 요원이 겪는 일상적 고충부터 정보 유통과 정보기관의 메커니즘까지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그는 “국정원 요원의 연애와 결혼, 자녀 관계 고충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특별히 불이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가 전한 이야기들은 보통 사람들이 현실에서 쉽사리 경험하는 일은 아니었다.
국정원 요원의 주 활동 무대는 해외다. 외국어는 필수다. 공작에 필요한 외국어 구사는 일반적 외국어 구사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배워서 잘하는 수준은 곤란하다”고 했다. 국정원 요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외국어를 학습하고 사용할까.
국가 존망을 좌우하는 정보전의 중심에 선 요원에게 ‘정보원’은 필수적인 존재다. 돈을 많이 준다면 정보원 확보가 수월할까. 한 대표는 “정보원 고용-운용-해고 과정은 목적성을 띨 수밖에 없지만,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지점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보원과의 관계는 ‘연애’의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요원-정보원 관계의 본질과 한계는 뭘까. 또 흔히 발생하는 정보원의 배신은 어떻게 평가할까.
국정원은 영화와 드라마 단골 소재다. 수많은 국정원 관련 콘텐트 중 유독 한 대표의 눈길을 끈 드라마는 MBC〈검은 태양〉이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드라마의 어떤 지점이 실제 국정원 활동과 비슷하다고 느꼈을까.
목차
1. ‘20년 베테랑’ 요원, 국정원 퇴사한 이유는
2. “국정원 요원? 못 믿겠다” 험난한 연애와 결혼 과정
3. ‘합법’과 ‘합목적’ 사이, 국정원 ‘블랙’의 임무는
4. “어설픈 외국인 수준 안 돼” 국정원 요원의 외국어 능력
5. ‘목에 칼 겨누는데, 요원 숨겨준다?’ 정보원 포섭부터 해고, 핵심은
6. 20년 베테랑 요원, 드라마 ‘검은 태양’ 남궁민 연기에 놀란 이유
‘20년 베테랑’ 국정원 요원의 퇴사, 이유는
- 국정원에 들어간 이유는.
국정원 입사는 아버지의 평생 꿈이었다. 그 꿈을 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3수를 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 20년 차 ‘베테랑’이 국정원을 관뒀다. 이유는.
국가 공무원은 통상 정년까지 다니는데,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퇴사할 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설득하는 데 3년 걸렸다. 아내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 퇴사율은.
퇴사를 잘 안 한다. 정년까지 다니는 게 99.9%다.
- 최근 입사자들의 성향은. 과거와 다른가.
재직 중인 후배들 얘기 들어보면 소위 MZ 성향이 많지만, 그런데도 정말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친구가 많다. 사실 놀라울 정도다. ‘우리나라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임무에 위험한 일도 많을 거 같다. 힘들지는 않았나.
소방관, 군인, 경찰 등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직업은 다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뭔가 숨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적으로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방에게 뭔가 숨기고, 속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아마 국정원 직원 모두가 그런 마음일 것이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사회생활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 관계가 깊어지면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나.
(관계가)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다닐 때도 원우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2~3년을 같이 생활하며 내 신분을 숨겼다. 인간적인 신뢰를 역행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많았다. ‘그게 뭐 별거야?’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그 상황이 되면 심리적 갈등이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