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동교동 사저 매각 논란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동교동 사저를 국비와 서울시비, 마포구비를 보태서 매입해 문화유산화할 것을 제안한다”며 “대한민국의 공공재산이자 문화역사의 산실로 만드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DJ 3남 김홍걸 전 의원 소유였던 동교동 사저는 지난달 24일 커피프랜차이즈업체 대표 박모(51)씨 등 3명에게 약 100억원에 팔렸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동교동 사저 매각 관련 공개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일 구(舊) 동교동계인 전병헌 새로운미래 대표가 동교동 사저 앞에서 “매각을 백지화하라”고 주장하고 같은 당 이낙연 전 대표도 “사저는 DJ가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위대한 증거”라고 가세하자 뒤늦게 나섰다는 평가다.
①왜 팔았나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1번지에 있는 동교동 사저는 DJ가 퇴임 전인 2002년 본래 건물을 헐고 20억여원을 들여 신축했다. 연면적 198.5평(지하 1층·지상 2층)짜리 본동(이희호 여사 소유)과 39.2평(지하 1층·지상 1층)짜리 차고동(대통령 경호처 소유)으로 구성됐다. 2019년 6월 이 여사가 서거한 뒤 민법 1000조 ‘피상속인(이 여사)의 직계비속이 상속인이 된다’는 조항에 따라 김 전 의원이 상속받았다. 2019년 당시 본동 공시가격은 32억5000만원으로 차고동까지 합쳐 상속세 17억원가량이 발생했다.
김 전 의원은 중앙일보에 “거액의 상속세 문제로 세무서 독촉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작년에 매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상속세 납부을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월 수백만 원대 원리금과 연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재산세까지 내야 해서 김 전 의원도 버거워했다”고 말했다.
②공공매입 왜 불발됐나
이 여사의 유언장에는 “만약 지자체와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면 보상금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가 2009년 공공매입한 마포구 서교동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처럼 동교동 사저도 그 전례를 따르길 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20년 서울시는 김 전 의원의 공공매입 및 문화유산등록 요청을 심의 끝에 부결시켰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동교동 사저는 2002년에 리모델링 준공돼 당시 18년 된 건물이어서 관련 규정상 50년이 지나지 못해 심의에서 부결됐다”고 설명했다.
심의와는 별개로 김 전 의원의 상속세 체납과 대출로 인해 세무서·시중은행이 설정한 근저당권(채권최고액 24억2179만원)이 남아있는 이상 공공매입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2년 뒤인 2022년 DJ 2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서울시에 공공매입·문화유산 등록을 재요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부됐다.
③회수 가능성은
사저를 매입한 박씨는 매각 당시 김 전 의원에게 “본동에는 추모시설을 만들고 차고동은 개축해 업무용으로 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받고 간단한 음료도 파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1층에 전시시설과 카페를 겸한 ‘노벨커피숍’이라는 가칭을 지었다는 말도 들린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회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했다. 지난달 말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박지원·정동영·추미애·김민석 의원은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모임을 열었고 직후 박지원 의원은 6억원대 사재를 내놓겠다는 입장도 냈다. 동교동계 인사는 “김대중재단 차원에서 재매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언론인터뷰에서 “뜻이 있어서 매입했는데 되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개인이 안 팔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얼마나 공익적으로 쓰일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④정치적 파장은
이재명 전 대표는 7일까지 동교동 사저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DJ의 총재 비서실장 출신 김민석 의원은 전날 “이 전 대표에게 보고 드리니, ‘DJ의 유업을 이어야 할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해결 방안을 찾자’고 하시더라”며 이 전 대표의 말을 전했다.
22대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 내 동교동계는 확연하게 줄었다. 동교동계이자 비명계로 꼽히는 설훈·김한정 전 의원 등은 낙천됐다. 이 전 대표가 현재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칫 동교동 사저 문제가 비명계 대 친명계의 정통론 싸움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친명계 중진 의원은 “민주당 탈당 세력인 새로운미래가 이 문제를 꺼낸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광주 권리당원 득표에서 83.6%를 기록하는 등 다른 지역보다 5%포인트가량 적은 표를 받았다. 투표율도 낮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호남 민심을 위해서도, DJ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전 대표가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