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민생부터”…동시에 협치 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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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악화일로를 걷던 정치권에서 7일 협치론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다. 거야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무능 국회’에 대한 피로감, 여기에 경제 비상상황까지 겹치자 여야 모두 정쟁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7일 오전 국회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에 촉구한다. 8월 임시국회에서 정쟁 휴전을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은 민생 입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도록 협의하자”고 했다.

한동훈 대표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존폐를 두고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한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나오면 더 좋지만, 어렵다면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과 공개 토론하겠다”며 “이번 토론을 계기로 건강한 여야 관계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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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청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 비상상황 대처와 초당적 위기 극복을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 이재명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한 것에 더해 공식적으로 ‘윤석열-이재명’ 회담을 요청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윤 정부 혼자 힘만으로는 위기 돌파가 어려워 여야가 상황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도 했다.

여의도발(發) 협치 훈풍에 대통령실도 반응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이 전 대표와의 만남을 진지하게 논의해 볼 것”이라며 “다만 형식은 한 대표까지 참석하는 3자 회동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도 이날 취재진과 만나 “민생을 위해 생각과 마음을 모아 정책 협의를 하는 건 너무 좋은 일”이라며 “(회담) 절차나 격식은 차후에 따져도 되지 않나”라고 반응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모습은 22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 개원(6월 5일) 이후 두 달간 여야는 극한 대치만을 이어갔다.

티메프·증시, 민생 2연타여·야·정 대화의 장으로 떠밀었다

김상훈 국민의힘(오른쪽)·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7일 국회에서 22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으로 민생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정책위의장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훈 국민의힘(오른쪽)·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7일 국회에서 22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으로 민생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정책위의장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이 기간 7개 법안(순직해병 특검법·방송 4법·25만원 지원법·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했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섰으며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예고했다. 여야 합의로 처리된 법안은 없었다. 극도로 경색된 정국에서 여야와 대통령실이 같은 날 협치에 무게를 둔 메시지를 내자 “정국의 활로를 열 여건이 조성됐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기류가 달라진 건 야당의 입법 강행→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결 및 법안 폐기라는 도돌이표 정치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 하나의 유의미한 결과물도 내지 못한 무능한 22대 국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며 “여야 모두 국민이 등 돌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협치론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시기적으로는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에 이어 주식시장 폭락으로 2연타를 맞은 경제 상황이 역설적으로 협치의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생에 빨간불이 켜진 긴급 상황이 정치권을 동시에 대화의 장으로 밀어냈다”(여권 관계자)는 것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여야 상층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한 대표는 취임 초기 티메프 사태나 전기요금 등 민생 이슈 해결의 ‘속도전’을 부각하고 있지만 “민주당 협조 없이는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인한 폐기 법안이 하나둘씩 쌓여 가는 상황에서 벗어날 출구가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그동안 특검법과 각종 탄핵안을 요란하게 추진했지만,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내부 회의론이 상당했다”며 “종일 강경 모드인 원내 지도부에 대한 의문도 커지던 찰나였다”고 말했다.

여야 정책위의장도 이날 첫 회동을 갖고 민생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다짐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장은 “민주당의 당론 법안 중 범죄 피해자 보호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등은 같이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진성준 민주당 의장도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배제하는 ‘구하라법’, 간호법 제정안 등을 거론하며 “미세한 쟁점을 조율해 신속 처리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이날 양측은 혹서기 취약계층 전기요금 감면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를 봤다고 한다. 이날 추 원내대표가 박 원내대표의 상설 협의기구 제안에 대해 “환영한다”고 화답하면서 여·야·정 협의체 구성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21·22대 국회에서 재표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두 번 폐기됐던 순직해병 특검법을 8일 또다시 발의한다. 민주당이 벼르는 ‘2특검 4국정조사’도 협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여당은 “협치 파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취임 뒤 8월 말이나 9월 초에 전격 영수회담이 성사돼도 ‘윤석열-이재명’ 2인 회담 일지, 한동훈 대표까지 포함한 3자회담이 될지는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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