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10범 전청조 자백 이끌다, 그 여검사의 ‘과자 6봉지’

  • 카드 발행 일시2024.08.07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는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지식 구독 서비스입니다. 더중앙 독자에게 오늘 하루만 무료로 전문을 공개합니다. 더중앙플러스(https://www.joongang.co.kr/plus) 구독 후 더 다양한 콘텐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법조 1번지 서초동의 첫인상은 ‘사각형’이다. 반포대로를 사이에 두고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검의 뾰족한 모서리가 위세 싸움을 하고 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법전을 펼친 듯한 엄정한 분위기를 풍겨낸다.

칙칙하고 딱딱하다. 바라만 봐도 주눅이 든다. 건물 안은 더 그렇다. 여러 겹의 보안 시스템을 거쳐 복도를 걷다 보면 정숙함에 입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왼쪽)과 서울고검·중앙지검 청사.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왼쪽)과 서울고검·중앙지검 청사. 연합뉴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전경. 연합뉴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전경. 연합뉴스

이런 법원·검찰청에서 일하는 판사·검사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간 다소 진부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이분법 공식이 유행한다. 정의롭거나 부패했거나, 세상사 거리를 둔 수도승이라거나 권력에 줄을 댄 출세만능주의자라거나. 그런데 외면 묘사는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천편일률적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젊은, 요즘 판·검사들의 이야기가. 직접 만나보니 대학 시절 PC방 게임에 미쳐 부모님에게 각서까지 썼던 ‘금쪽이’라던가 법정에 들어가기 전 구형 문구를 읊조리며 달달 외우는 ‘소심이’라는 등 다양했다.

〈로변 오디세이〉이번 화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MZ 세대 판·검사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들이 어떻게 판·검사가 됐는지 샅샅이 살펴봤다. 로펌의 고연봉을 뒤로하고 공직에 뛰어든 이유가 있단다. 그 시작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극의 주연 전청조를 수사한 검사다.

📃목차


게임광 법대생…전청조 자백시킨 검사 됐다
법정 속 검사 카리스마, 사실은 연습의 결과?
MZ판사가 말하는 법원이 좋은 직장인 이유
텃밭 가꾸고 사람 살리고…이런 법원도 있다

게임광 법대생…전청조 자백시킨 검사 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최혜민 검사가 지난 7월 서울동부지검 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최혜민 검사가 지난 7월 서울동부지검 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의 최혜민(38·변시 4회) 검사는 여러 굵직한 사건을 맡아온 9년 차 형사부 검사다. 그를 만나기 전엔 거칠고 무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이미지만 가졌다. 그러나 그의 굴곡진 학창 시절 이야기를 직접 듣다 보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주변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한 명의 청년이 눈앞에 있었다. 법조인을 꿈꾸지만, 아직 방황하고 있는 학부생들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최 검사는 자신을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집요한 성격’이라고 했다. 다만 그 한 번을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이 다소 걸렸다. 이화여대 법학과 03학번으로 입학한 그가 학부 시절 끝장을 본 건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LoL)에 꽂혀서 한동안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롤뿐이랴. 한땐 프로야구에도 빠져서 선수들을 밤낮으로 따라다녔다. 돌아온 건 2번의 학사경고였다. 왜 그렇게까지 놀았느냐고 묻자 최 검사는 “‘마음만 먹으면 ‘뭐라도 하겠지’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끝까지 놀던 법대생은 대학 4학년 27살이 되던 해 변곡점을 맞았다. 아버지가 그를 호출한 것. 아버지는 자필로 각서를 쓰라고 했다. ‘내년까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겠다’는 글을 직접 써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 목표는 검사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했단다. 아버지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면 다시 주울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틴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맞는 소리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고 꾸짖었던 순간이 생생했다.

진로를 선택할 땐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것’으로 정했다. 검사는 틀린 걸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서 불의에 적극적으로 참견할 수 있는 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스쿨에서의 3년은 검사가 되기 위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1학년 때부터 변시 대비 정답 노트를 만들었다. 어떤 달은 하루 4시간만 자고 공부에 전념했다. 졸지 않으려고 서서 공부하다가 잠결에 순간 무릎이 꺾이는 순간도 겪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이마에 랜턴을 끼고 책을 들여다봤다.

검찰 실무 수업과 합숙에도 목숨을 걸었다. 과정이 진행될수록 ‘생존자’가 줄어드는 서바이벌 형식이었다. “하다못해 족구까지도 열심히 했다”는 게 최 검사 말이다. 한때의 ‘금쪽이’가 그렇게 검사로 환골탈태했다.

검사들 사이에선 “검사 생활 중 한 번쯤은 운명적인 사건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전직 금쪽이에게 온 건 ‘전청조 사건’이다. 주임검사로서 전청조의 자백을 끌어냈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빨리 간파하는 게 검사의 예민함이고 감(感)이다. 최 검사에겐 그간의 삶의 경험치가 전청조 사건에서 십분 발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