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4화. 미완으로 끝난 ‘평양백화점 사업’
」2004년 말, 주(駐)중국 대한민국대사관 무관보좌관(중령)이던 정규필은 평양백화점에 중국 상점 500개를 입점시키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대북 공작장교 정규필은 2002년 10월 무관보좌관으로 중국에 두 번째로 파견됐다. 선양(瀋陽)에서 1995년부터 3년 동안 ‘만철소재 선양사무소장’이라고 신분을 위장한 흑색(블랙)으로 활동한 그는 귀국해 정보사 본부에 근무하다가 2년 만에 외교관 신분의 백색(화이트)이 됐다. ‘까마귀’에서 ‘백로’로 변신, 대북 첩보의 격전장이던 중국으로 복귀한 것이다.
정보사 출신의 무관보좌관은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소속이지만 정보사 임무도 병행하며 두 곳에 각각 보고하는 직책이었다. 군사·외교 등 국방정보본부의 공식적인 업무와 별도로 정보사의 고유 업무인 대북 공작 등 비공개적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비밀 문건과 교신에 접근하는 암호코드도 국방정보본부와 정보사 두 개를 따로 받았다.
2000만원짜리 김일성·김정일 얼굴 도자기
공작원으로 뛰어든 ‘평양백화점 프로젝트’는 동갑내기로 절친했던 중국인 지인 A와 의기투합한 사업이었다. “유대인도 혀를 내두른다”는 그 유명한 ‘온주상인(溫州商人)’ 협회를 끌어들여 북한에 진출하는 구상이었다. 북한 측 카운터파트너는 김정일의 금시계를 하사품으로 받아 중국 측에 선물할 정도의 고위층이었다.
양해각서까지 완성될 정도로 교섭은 급물살을 탔다. 매장 한 곳에 중국인 현지 관리인 1명과 북한 주민 3명을 고용하며, 평양에 체류할 중국인 500명을 수용할 호텔을 건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A는 평양백화점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 김일성·김정숙(김정일 생모)·김정일의 컬러사진을 요청해 받아냈다. 이어 세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도자기를 주문 제작해 선물로 준비했다. 도자기 하나에 당시 시가로 2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고 A는 전했다. 도자기 전달식에는 북한 인사 3명이 나와 하나씩 품에 안고 돌아갔다고 한다.
왜 이런 공작을 추진했을까.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공작의 이득은 무엇인지, 그 동기와 배경에 대한 정규필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