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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R의 공포…경기·부동산·가계빚 정교한 대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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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 Fed 금리 인하 속도낼 듯

부동산 공급 대책과 금융·통화 정책의 조합 필요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9월 금리 인하 시사 발언에 고무됐던 시장은 미국의 7월 고용 지표 악화와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보낸 경기 위축 신호에 지난주 요동쳤다. 경기 침체 우려로 기술주 투매까지 빚어지며, 지난 2일 아시아 증시는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국내 증시에서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 78조6430억원이 사라졌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한국 경제에는 복합 불안의 요인이다. Fed가 금리 인하의 속도와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 한국은행도 인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목표치에 근접하고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 위축으로 2분기 경제가 역성장(-0.2%)한 상황에서 내수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빚 부담을 줄여줄 필요도 있다.

문제는 기준금리를 내리면 달아오르는 부동산 시장과 늘어나는 가계 부채를 더 자극할 수 있다. 전세 사기와 금리 하락, 정책 대출 등의 영향으로 서울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19주 연속 상승세다. 전셋값은 63개월 연속 뛰고 있다. 수도권 집값도 45주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청약에도 역대급 인원이 몰리고 있다. 가계 빚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월평균 5조원가량 늘던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에 7조6000억원가량 늘었다. 금리 인하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수 있다.

경기 침체 우려는 한국 수출의 견인차인 반도체 업황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열풍도 식어가고 있어서다. 실적 부진과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며 인텔 주가는 50년 만에 최대 하락 폭(-26.06%)을 기록했다. 시장의 불안을 보여주듯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보유했던 애플 주식의 절반가량을 지난 2분기 매각했다.

커지는 R의 공포 속 금리 인하와 경기 둔화, 부동산 시장, 가계 부채라는 복합 위기에 대처하는 정책 운용 능력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가 오는 15일 이전에 발표할 부동산 대책이 그 첫 번째 관문이다.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공급 대책을 내놓고, 금융 및 통화 정책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도입 연기 등으로 대출과 집값 급등을 부추기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안이한 인식 등으로 인한 정책 실기 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치권도 민생과 동떨어진 정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각종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