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차 무기는 세계 최고 기능공…그게 IT 인재 영입 발목 잡는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8.05

달 탐사 모빌리티 개발 전력 담당.

이런 직무의 채용공고, 어디서 나왔을까.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니다.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달 탐사 전용 차량 ‘로버’ 개발에 착수했는데, 이곳에서 달 탐사 모빌리티의 전력계, 배터리 장치, 태양 전지판 개발을 총괄하는 인력을 뽑는 공고다. 현대차는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차량용 반도체 개발 관련 채용 공고도 냈다. 자동차 기업에서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전엔 뽑을 필요 없던 새로운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달 탐사 전용 차량 '로버' 개발 모델 콘셉트 이미지.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달 탐사 전용 차량 '로버' 개발 모델 콘셉트 이미지. 사진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인재 욕심이 그 배경에 있다. 여느 최고경영자(CEO)가 그렇듯 정 회장도 기업이 한 단계 점프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인력이 그 시작이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10월 일화다. 현대차는 싱가포르에서 글로벌리더스포럼(GLF)을 열었다. 사장급 임원을 주로 초청하는 현대차 내부 행사로 혁신 기술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도 하는 자리다. 개최 사실 자체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다.

포럼의 마지막 강연자는 ‘그랩’의 앤서니 탄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랩은 동남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승차공유·음식배달 서비스 기업으로 2021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날 강연에서 탄 CEO는 “우리는 한국으로 치면 ‘배달의 민족’과 ‘카카오택시’ 등을 합친 서비스를 한다. 안 하는 게 없다. 그러다보니 사용자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고, 이 빅데이터를 이용해 사업을 더 확장할 수도 있다”며 성장 전략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 포럼을 지켜본 한 참석자는 탄 CEO에 대해 “뿜어내는 에너지량이 엄청났다. 우리 같은 ‘노땅’들은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에너지”라고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앤서니 탄 그랩 CEO는 2018년 만난 적이 있다. 2018년 11월 6일 싱가포르에서 전략적투자 계약을 체결한 정 회장(오른쪽)과 탄 CEO. 사진 블룸버그 뉴이코노미포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앤서니 탄 그랩 CEO는 2018년 만난 적이 있다. 2018년 11월 6일 싱가포르에서 전략적투자 계약을 체결한 정 회장(오른쪽)과 탄 CEO. 사진 블룸버그 뉴이코노미포럼

그때 객석 맨 앞 자리에 정의선 회장이 앉아 있었다. 강연 중 그는 자리를 한 번도 뜨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정 회장은 평소 조언을 구하던 한 참석자에게 “탄 CEO의 프리젠테이션이 참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탄 CEO 같은 사람이 우리 현대차에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영입 욕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정 회장은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한 이후 확실한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 2006년 정 회장의 삼고초려로 기아에 온 피터 슈라이어 전 현대차 디자인경영담당 사장(현 고문)이나 2016년 현대차에 합류한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 최고디자인책임자(CDO) 겸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주도한 현대차·기아의 디자인 변화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하는 시작점이 됐다. 성과가 나면서 인재영입은 디자인에서 시작해 엔진 개발, 차량 평가 등 연구·개발(R&D) 전반으로 확대했고 마케팅과 상품 기획에서도 영입이 이뤄졌다고 당시 인사 담당 임원은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IT 인력 사이에서 현대차는 고려 대상 아냐”

그러나 내연기관차 시대의 이야기일뿐이다. 자율주행, SDV(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 로봇, AAM을 비롯해 달 탐사 모빌리티까지 미래 기술 관련해서도 정 회장의 인재 영입이 성과를 내고 있냐면, 아직은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국내 IT 대기업에서 일하는 팀장급 직원은 “IT, 로봇 등 ‘핫’한 분야는 갈 곳이 많다.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로 유명하지 IT 회사로 이름이 있지 않진 않나. 경력이 좀 있는 고급 IT 인력이 이직 때 현대차를 고려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해외 박사급 인재를 대상으로 ‘현대 비전 컨퍼런스’도 열고 있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내 법인 소속으로 뽑힌 외국인 인력은 미국 9명 등 총 15명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