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창리 핵시설” 한미 낚였다…北 ‘비닐봉투 역공작’ 전말 [스파이전쟁 2부-대북공작원 ③]

  • 카드 발행 일시2024.07.31

〈제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3화. 금창리 핵 시설 의혹의 전말 

금창리 핵시설 논란의 진실 밝혀줄 첫 증언 확보  

1990년대 말 한반도를 군사적 긴장 위기로 몰아넣었던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사건은 정체 모를 흙과 물이 담긴 비닐봉지에서 시작됐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금창리 핵 의혹은 98년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키로 약속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금창리에서 핵 시설을 몰래 구축하고 있다는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의 주장을 뼈대로 한다. 당시 미국은 금창리에서 채취됐다는 흙과 물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 검증을 강행했으나 입증에 실패했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미국의 오판과 망신은 ‘흙과 물은 금창리에서 가져온 것’이란 잘못된 믿음에서 초래됐다. 그 후 출처가 어디인지,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등 의문을 남긴 채 흙과 물의 정체는 25년 넘게 역사적 비밀 속에 숨었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취재팀은 수상한 흙과 물의 유통 과정에 직접 관여했던 정규필 전 국군정보사령부 예비역 대령(이하 존칭 생략)의 증언을 단독으로 확보했다.

문제의 흙과 물은 내가 중국 선양(瀋陽)에 파견돼 흑색(Black) 공작원으로 활동할 당시 단둥(丹東)에 가서 전달책으로부터 넘겨받아 정보사 본부에 보낸 것이다. 제3의 다른 장소에서 채취한 흙과 물이 금창리 것으로 둔갑하는 바람에 사달이 벌어진 일이었다. 북한의 공작이 있었을 것이다. 

정규필의 증언은 베일에 쌓였던 금창리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단서라는 점에 의미가 크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이 흙과 물의 정체를 두고 벌였던 치열한 ‘공작 전쟁’을 소개한다.

정규필 예비역 대령이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중국 공작원 시절 경험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정규필 예비역 대령이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중국 공작원 시절 경험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전달책 접선해 물건 받아 서울로 보내라”

1997년 6월의 어느 날, 정규필에게 서울 정보사 본부로부터 밀명(密命)이 떨어졌다.

단둥의 중간전달책과 접선해 ‘중요한 물건’ 하나를 받아 서울로 보내라. 

정규필은 북한과 인접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에 근거지를 둔 흑색 공작원이었다. 그는 95년 9월 정보사 소속 현역 소령이던 신분을 감춘 채 선양으로 잠입했다. ‘만철소재 선양사무소장’이 그의 대외적 직함이었다.

본부에선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접선할 장소와 중국 사람의 이름만 통보했다. 해외에서 대북 군사 정보 수집과 첩보 업무를 하는 정보사의 특성상 북한 관련 공작이겠거니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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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필은 단둥에 파견된 정보사 공작원이 있는데도 왜 선양에 있는 자신을 선택했는지 의아했다. 단둥의 정보사 흑색공작원이 단둥 현지인과 대면할 경우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리라. 중국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는 적임자가 필요했을 수도 있었겠다.

비닐봉지에 싸인 정체 모를 물질

주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단동에 출장 가는 구실을 만들었다. 무역 거래를 위한 샘플을 받으러 가는 것처럼 꾸몄다. 명령을 받고 이튿날 오전 8시쯤 선양에서 기차를 타고 250km 거리를 4시간반에 걸려 단둥역에 도착했다. 본부에서 준 단둥 시내 건물의 사무실 주소로 찾아갔다.

전달책은 40~50대의 중국인 한족으로 보였다. 정보사가 포섭한 휴민트(인간정보)인 듯했다. 중국어로 인사치레한 뒤 인수할 물건을 확인했다. 그의 기억이다.

가로 20cmx세로 30cm 크기 정도의 허름한 비닐봉지였다. 봉지 안에는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통과 흙 같은 고체가 담긴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4∼5kg 정도 무게가 묵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