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해방정국의 3대 비극
」①1946년 대구 사건(상)
」반공이 지배했던 엄혹한 시대
사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할 말을 못 하고 안 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학문이 이데올로기의 외풍(外風)을 만나기 때문이다. 일찍이 헝가리의 사회학자 만하임(Karl Mannheim)은 이와 같은 현실을 ‘존재구속성(Seinsgebundenheit)’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와 같은 이념의 굴레를 쓰고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반공이라는 불퇴전의 보루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공부하던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막스 베버(Max Weber)의 책이 공항검색대에서 압수되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세관원 대답이, “저자가 막스(?)이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고전으로 꼽히는 무어(B. Moore)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1966)은 표지가 빨갛다는 이유로 금서였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Sergei Rakhmaninov)가 소련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의 음악이 창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볼륨을 낮춰 들어야 했다. 외국에서 좌파 서적이라도 가지고 들어오려면 표지를 찢어버리거나 매직펜으로 제목을 지워 세관원의 압수를 모면했다.
고(故) 방기중(方基中) 연세대 교수는 1993년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자였던 백남운(白南雲)을 연구한 단행본을 내면서 책 제목에 그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 채 『한국 근현대사상사 연구』라고 붙이고 작은 글씨로 ‘1930~19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 경제사상’이라는 부제로 출판했다. 백남운 한 사람을 다루면서 『한국근현대사상사 연구』라는 큰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일이지만, 『백남운 연구』라고 제목을 붙이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 당시의 학문 풍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