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연세대 경영대학의 한 강의실. 이무원 교수의 ‘조직학습:기회와 함정’ 강의를 참관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토론자로 학생들 앞에 나섰다.
“‘현대차 노조’ 하면 강성노조, 정치 파업 같은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때문에 노조가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노조의 상대방인 회사 측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현대차의 성과를 노동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나누자는 주장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학생들의 질문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막으려 하지도 않았다. 정 회장 스스로 나선 질문 공세의 한복판이었다. 옅은 보라색톤의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학생들 앞에 선 그는 긴장한 기색 없이 답했다.
“정곡을 찌르는 토론 주제네요. 저도 여러분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님도 가장 어려워 하신 게 노조 문제였다고 해요. 세상이 바뀌어서 저는 유연하게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제일 어려운 게 노조 대응이더라고요. 더 많이 고민해보겠습니다.”
100분 가량의 토론에서 노조 관련 내용에만 약 20분이 할애됐다. 정 회장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처럼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으로 학생들과 토론을 이끌었다.
학생들도 정 회장이 노사 중립적 시각에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놀랍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잘 해야 겠네요”라고 화답했다.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어려운 일’. 현대차는 2019년부터 6년 연속 파업 없이 임금 협상 등을 이뤄오고 있지만(기아는 2020년부터) 정 회장의 대답처럼 노조와 대화하고 협상하는, 노조 대응은 최고경영진에겐 여전히 고난도의 과제다.
연세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처럼, 정 회장은 노조와의 직접 스킨십에 자신감을 나타냈었다. 회장 취임 보름 뒤인 2020년 11월 울산공장을 찾아가 이상수 당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을 직접 만난 게 그 예다. 현대차그룹에서 오너 경영인과 노조위원장 간 공식 면담이 이뤄진 건 2001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헌구 당시 지부장을 만난 이후 19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