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엉뚱하게 줄줄 샌 코로나 소상공인 지원금 3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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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21년 12월 8일 코로나피해 자영업 총연합 소상공인들이 국회 앞에서 열린 코로나 피해 실질 보상 촉구 정부·여당 규탄대회에서 실질적인 손실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12월 8일 코로나피해 자영업 총연합 소상공인들이 국회 앞에서 열린 코로나 피해 실질 보상 촉구 정부·여당 규탄대회에서 실질적인 손실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중기부가 현장 매출액 꼼꼼히 점검 안 한 탓

현금지원 시 면밀한 매뉴얼로 재발 막아야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지원 사업’ 감사 보고서는 정부의 현금지원 사업이 방만하게 추진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총정리한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2020~2022년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약 61조4000억원(재난지원금 일곱 차례, 손실보상금 네 차례)을 지급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손실보상금 등 현금지원 사업에서 허술한 제도 관리와 사후 검증 부실 때문에 약 3조2323억원(취지와 다른 지출 3조1200억원, 지원 요건 미충족 1102억원, 부정수급 21억원)이 잘못 쓰여졌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었다.

재난지원금의 취지는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액 감소가 발생한 소상공인을 지원하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실태를 파악해 보니 2022년까지 4년 연속 연매출액이 증가했는데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례가 17만9000개 사업자, 2조1000억원에 달했다. 사업을 추진한 중소벤처기업부가 매출액 감소 여부를 꼼꼼히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태양광발전소는 2021년 5월 개업 이후 연말까지 매출액이 0원이었는데 동종 업종 매출액 감소를 이유로 4차 재난지원금 40만원을 받았고, 5·6차 재난지원금(400만원)은 매출액 확인도 없이 그냥 받았다고 한다. 또 중기부가 피해만 확인되면 일정액을 지급했기 때문에 36만6000개 사업자가 피해 규모 이상의 지원금(2조6847억원)을 받았다. 심지어 피해액보다 5배 이상의 지원금을 받은 곳도 6만8000개(8527억원)나 됐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사태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급박하게 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허술한 부분이 생긴 건 불가항력으로 볼 수도 있다. 또 당시 패닉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광범위하게 돈을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감사원도 그런 사정을 감안해 담당자의 책임은 묻지 않고, 향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도록 중기부에 참고자료로만 통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교한 계획이나 관리 없이 주먹구구로 현금지원 사업을 벌이면 엉뚱한 곳으로 돈이 줄줄 샌다는 교훈은 되새겨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에선 ‘현금 살포’ 정책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진영도 영향을 받고 있다. 돈을 뿌리면 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금 지급은 단기적 문제 해결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근본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 부정수급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재정악화·물가상승 등의 다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정부는 이번 감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현금지원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의 효율성·형평성을 놓치지 않는 면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