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무비 이끌 꿈나무에 충분한 지원 해야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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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현정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이현정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유튜브·숏폼에 패스트푸드 같은 영상이 넘쳐 나죠. TV 끄고 책 읽으라는 말이 더는 안 통합니다. 오히려 아이가 보면 좋은 영상 콘텐트를 알려주고 보여줘야 하는 시대에 국고 지원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달 중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의 신임 집행위원장 이현정(54) 감독의 말이다. 25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이 감독은 그러면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24년 영화제 지원 대상 10곳 중 어린이·청소년 관련 영화제가 한 곳도 선정되지 않은 것은 시대에 역행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영진위의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 사업은 전체 예산이 올해 예년의 절반으로 감축되며 선정 대상도 지난해 41곳에서 10곳으로 대폭 축소됐다.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국내 최장수 어린이·청소년영화제인 BIKY는 매년 1억5000만원 안팎이던 국고 지원금이 전액 삭감됐다. 언론인 출신으로, ‘삼례’ ‘원시림’ 등 실험적인 영화를 주로 만든 이 감독이 올 1월 BIKY 집행위원장에 선임되며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는 “19년 간 순기능을 해온 영화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했다.

2006년 출범한 BIKY는 어린이·청소년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심사한 영화, 온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 등과 함께 국내 8대 영화제에 꼽힐 정도다. 그러나 올해 국고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개최 기간이 기존 일주일에서 닷새로 짧아졌고, 상영작도 34개국 113편으로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규모는 축소됐지만, 올해 2만명이 영화제를 다녀갔다.

제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 든 어린이 관객들. [사진 BIKY]

제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 든 어린이 관객들. [사진 BIKY]

이 위원장은 2017년부터 3년 간 BIKY 영화캠프 교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이탈리아·프랑스·몽골·한국 등 다국적 참가자들이 인도네시아 무슬림 친구와 문화 다양성을 경험하고, 지리산에서 홈스쿨링으로 큰 수줍음 많은 소녀가 불과 며칠 동안 영화를 배워 찍는 동안 주연 배우를 맡을 만큼 성격이 밝아지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 거죠. 창작자이자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영화 매개 교육이 성장기 아이의 성격, 인생관을 단 며칠 만에 얼마나 바꿔놓는지 몸소 겪고 깨달았습니다.”

그는 “극장·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도 어린이·청소년 대상 콘텐트가 있지만, 좋은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BIKY는 다음 세대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상영작 선정 잣대로 삼아왔다”고 했다. 올해 개막작인 캐나다 영화 ‘별의 메아리’가 한 예다. 동생을 사고로 잃은 소년의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외계인에 대한 상상과 맞물려 가슴 뭉클한 스토리로 만들어냈다. 이 감독은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도 극찬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영화 교육이 다른 나라들보다 뒤처진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어린이·청소년 영화 교육은 단기간에 뚜렷한 투자 결과가 나지 않는다”는 그는 “가정 내 문제, 청소년 우울, 미래세대가 사라져가는 저출산 문제 역시 단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가치관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등 유럽에선 이미 영화 문화 정책의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직 늦지 않았어요. 빛나는 K컬처가 K유스(어린이·청소년)를 통해 이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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