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이 운영하는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입점업체와 소비자 피해로 확산하고 있다. 판매자들이 상품 인도를 거부하고, 플랫폼에서 결제를 취소하거나 환불받으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몬·위메프의 월간 거래액은 지난달 기준 1조10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어 환불 대란으로 대규모 피해를 낳았던 ‘머지포인트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태 수습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구영배 큐텐 대표는 24일 중앙일보에 “위기 상황을 안정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위메프 입점 판매자 500여 명은 정산 예정일인 지난 7일 판매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회사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위메프 측은 17일 판매자 공지를 통해 연이율 10% 지연 이자 지급, 지연 금액의 10%포인트 지급 등 보상안을 제시하고 이달 말까지 정산을 마치겠다고 밝혔지만, 위메프에 이어 티몬까지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하며 입점업체들의 도미노 철수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모두투어·노랑풍선·교원투어 등 주요 여행사들은 전날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하던 여행상품 노출을 일제히 중단했다. 대금 정산이 일주일 이상 지연되자 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25일까지 밀린 대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9일 티몬과 위메프에서 철수했고 TV·데이터 홈쇼핑 업체들도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티몬·위메프는 아직 미정산 금액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티몬의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업종별로 정산 일정이 다르다 보니 피해 규모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중대형 업체 중에는 미수금만 100억원대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소비자와 판매자의) 피해액이 수천억원 규모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한 판매자 일부는 이미 판매한 상품을 무단으로 취소 처리하거나 고객이 티몬·위메프에서 결제 취소 후 직접 환불받으라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 플랫폼에서는 카드 결제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하다. 결제를 대행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가 취소 신청이 빗발치자 손해를 막기 위해 카드 취소 통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숙박권이나 물품 등을 신용카드로 구입한 소비자들이 여행이 취소되거나 물품을 못 받을 우려에 결제를 취소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의미다.
홈쇼핑·백화점·여행사·은행… 티몬·위메프서 줄줄이 탈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페이·삼성페이 등 간편결제사도 티몬과의 거래를 차단했다.
KB국민은행·SC제일은행 등 주요 은행은 티몬·위메프에 대한 선정산대출 상품 취급을 중단했다. 정산금 지연 사태로 대출 상환이 불투명해지면서다. 선정산대출은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 고객이 은행에서 먼저 판매대금(물건을 판매한 뒤 플랫폼으로부터 정산되지 않은 금액)을 지급받고, 정산일에 이커머스가 은행으로 정산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플랫폼이 정산금을 제때 입금하지 않으면 입점업체가 대신 이를 갚아야 할 수 있다. 줄도산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만일 이커머스가 제때 정산하지 못하면 대출받은 고객의 연체율이 올라갈 수 있어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산금 지급 지연으로 인한 고객의 추가 피해를 막고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현재까지 판매자·소비자의 피해 규모는 정확하게 추산되지 않고 있다. 큐텐그룹 관계자는 “미지급된 정산대금이 얼마인지, 판매자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소액 판매자에 대한 정산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판매자에 대한 대금 정산을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기준 티몬(437만 명)과 위메프(432만 명) 이용자 수는 869만 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금융당국과 공정위에서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표자와 주주 측에 자금조달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등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티몬·위메프는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업자’로 금융감독원에 등록돼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정산 금액 등 현황을 자체적으로 파악 중”이라며 “피해가 현실화할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피해자 구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기정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비자 피해 문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며 “한국소비자원의 피해조정 및 분쟁조정 기능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정산 지연 문제에 대한 공정위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민사상 채무불이행 문제라 공정거래법으로 의율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가능하지만, 공정위 소관 법령으로 제재하기는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큐텐의 위메프 인수 신고를 공정위가 승인해준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기업결합과 관련해서는 경쟁 제한성 위주로 심사한다”며 “당시 경쟁 제한 관련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판단해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자 이탈과 고객의 취소·환불 사태가 맞물려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2021년 모바일 결제 플랫폼 머지플러스는 모바일 상품권인 머지포인트 상품권을 발행가액보다 2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다가 돌연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축소했다. 당시 고객과 판매사들은 1000억원에 이르는 선불금을 돌려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