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로봇 볼트 조이는 한국…중국은 '로봇공장'서 찍어낸다 [차이나테크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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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로봇. 중앙포토

휴머노이드 로봇. 중앙포토

경북 지역에 위치한 A사는 2022년부터 서빙용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가전 생산 라인 일부를 로봇 생산용으로 전환했지만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않았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대신 작업자가 생산 라인에서 로봇의 볼트와 너트를 조인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산 로봇 공세로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 투자는 부담스럽다. 일단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A사는 중국에 밀린 한국 로봇 산업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로봇 제조 기업들이 생산 라인을 자동화해 서비스 로봇을 대량생산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고민하며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로봇 산업을 빠르게 육성한 중국은 가성비 좋은 각종 로봇을 대량 생산하며 한국 시장을 ‘로해전술’(로봇+인해전술)로 침투 중이다.

첨단 제조공장도 中 62개 vs 韓 5개

지난 30여년 간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은 로봇 산업을 육성해 이제 ‘노동 집약’에서 ‘로봇 집약’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전략의 다음 단계로 ‘신질(新質) 생산력 제고’에 나선 것이다. 신질 생산력은 시 주석이 지난해 9월 처음 언급한 단어로, 고품질 제품을 단순 제조하는 것을 넘어 첨단과학·산업기술을 활용해 품질 혁신에 이르는 생산 역량을 의미한다. 여태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사실상 ‘중국제조 2025’ 목표를 달성해 다음 스텝인 ‘중국제조 2035’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2022년 노동자 1만명 당 392대인 로봇 밀도를 2025년 약 500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미 중국의 연간 산업용 로봇 설치대 수는 2022년 29만258대로, 전 세계 설치 로봇 수(55만3052대)의 절반을 넘는다.

로봇을 활용한 등대공장 숫자에서도 중국은 크게 앞서 있다. 등대공장은 등대가 배를 안내하는 것처럼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도입해 제조업의 혁신을 이끄는 공장을 의미하는데, 세계경제포럼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컴퍼니가 매년 선정해 발표한다. 핵심은 로봇 기술력이다. 지난해말 기준 전 세계 153개 등대공장 중 62개(40.5%)는 중국 공장으로, 세계 최다였다. 주로 가전제품·자동차 등 대규모 소비재 생산 공장들이었다. 반면 한국은 포스코·LG전자·LS일렉트릭 등 5곳뿐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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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기술, 사람 닮은 휴머노이드로 진화

중국 애스트리봇(Astribot)이 만든 가사 휴머노이스 ‘S1’은 과도로 과일을 깎거나, 옷을 다리거나 개주고, 화분에 물주기 등을 할 수 있다. 애스트리봇 유튜브 캡처

중국 애스트리봇(Astribot)이 만든 가사 휴머노이스 ‘S1’은 과도로 과일을 깎거나, 옷을 다리거나 개주고, 화분에 물주기 등을 할 수 있다. 애스트리봇 유튜브 캡처

중국의 로봇굴기는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해, 인간을 닮은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중국 유비테크가 지난 4월 공개한 휴머노이드 ‘워커S’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한다. 워커S에는 ‘중국판 챗GPT’로 불리는 바이두의 생성 AI 어니봇이 탑재됐다. 중국 애스트리봇이 만든 가사 휴머노이스 ‘S1’은 과도로 과일을 깎거나, 옷을 다리거나 개주고, 화분에 물주기 같은 고난도 관절 운동을 인간 수준으로 할 수 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혁신센터는 지난 4월 세계 첫 전기 휴머노이드 로봇 ‘톈궁’을 공개했다. 기름의 압력으로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유압식이 아닌,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톈궁은 유압식 로봇보다 더 정밀하게 위치를 제어할 수 있다. 키 163㎝에 무게 43㎏의 톈궁은 초당 550조의 연산 처리 능력도 갖췄다. 인간의 오감과 신체 행동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면 제조·물류·재해 현장·가사노동 등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뒤에는 AI 기술력이 있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은 지난 2일 ‘2024 글로벌 디지털 경제 백서’를 공개하며 올 1분기 전 세계 AI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234개 중 71개가 중국에 있다고 발표했다. 가치있는 AI 기업 셋 중 하나는 중국에 있다는 자신감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 사진 보스턴 다이내믹스

보스턴 다이내믹스 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 사진 보스턴 다이내믹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중국 정부 로봇산업 성장 주도 

전기차·반도체 산업에서 그랬듯 중국 정부는 로봇 산업도 직접 육성했다. 2021년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8개 부처는 ‘제14차 지능형 제조 발전 5개년 계획’을 통해 2025년까지 연 매출 2000만 위안(약 38억원) 이상인 제조 기업들에 디지털 인프라를 의무화했다. 소규모 기업들도 생산효율과 제품 수율, 에너지 활용 면에서 제조 혁신을 하라는 의미다.

중국 최대의 로봇·자동화 기업인 시아순은 건설기기·오토바이 제조사에서 2000년 항공우주·엔지니어링 분야로 확장하며 도약했다.  해상고속도로 건설, 수력발전 프로젝트 등 굵직한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기술을 축적했다. 장진 시아순 사장은 “이런 지원 덕분에 중국의 산업용 로봇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수입 의존도도 줄었다”라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에 밝혔다. 중국은 이제 일본 화낙·야스카와전기, 스위스 ABB, 독일 쿠카 등이 장악한 첨단 산업용 로봇을 국산화하려는 단계에 진입했다. 배터리 부품 조립 등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로봇도 직접 제조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로봇 산업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미국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이 시장에 진출했고, ‘휴보 아빠’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설립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 투자를 받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장이 작고, 기술 리더십도 중국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로봇시장 규모는 16억4000만 달러(약 2조2600억원)으로, 중국(68억2000만 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최혁렬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10년 전 만에도 한국이 로봇 신기술을 발표하면 중국 기업·학계가 와서 사진·동영상을 찍어갔지만, 지금은 정 반대”라며 “국내에 훌륭한 인재들이 있어도, 정부의 관련 분야 연구개발 지원은 10년째 정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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