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화재 4회, 폭발 3회…위험 징후 무시했던 아리셀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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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고 잇따랐지만 안전 규정도 장비도 미비

금속 화재 발생 물질 안전 기준 강화해야

경기도 화성시 리튬 배터리 공장 아리셀에선 지난달 발생한 참사 외에도 최근 3년간 네 차례나 더 불이 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에서 군에 납품한 1차 전지도 지난 3년 동안 세 차례나 폭발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화재와 폭발에 대한 안전 규정과 예방 조치는 사실상 없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사건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 2021년 두 차례, 2022년에 한 차례 불이 났고, 참사 이틀 전인 올 6월 22일에도 화재가 발생했었다. 모두 리튬 배터리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또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아리셀이 육군에 납품한 배터리가 2022년 2회, 지난해 1회 폭발했었다.

이런 이력을 보면 적어도 아리셀은 제품과 생산 과정에 화재와 폭발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는 금속 화재용 소화기가 없어 참사 당시 일반 소화기로 불을 끄려다 폭발과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배터리 제품 3만1000여 개를 출구 쪽에 쌓아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안전교육도 없이 투입했다가 참혹한 변을 당했다.

당국도 위험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경기도 남양 119안전센터는 아리셀 3동 생산라인에 대해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 피해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소방활동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아리셀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체 점검 보고서를 냈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갔다. 노동부는 아리셀을 2년 연속 ‘고위험 사업장’으로 지정해 통보했었다. 하지만 ‘자율적인 노력’을 하라는 요청만 하고 말았다. 수많은 위험 징후를 그냥 넘겨버린 결과는 결국 대형 참사로 귀결됐다.  ‘모든 참사는 인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리튬 관련 화재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다. 리튬은 열과 압력이 가해지면 쉽게 폭발한다. 금수성(禁水性) 물질이어서 물을 뿌리면 폭발력만 커진다. 그런데 환경부는 상온에서 불이 잘 안 붙는다는 이유로 유해화학물질로 규정하지 않았다. 소방청도 리튬 등 금속 화재는 일반 소화기로 끌 수 없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 전용 소화기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리튬 배터리 제조 라인도 일반 제조업체와 똑같이 연면적 3만㎡를 넘지 않으면 중점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특별점검도 받지 않는다.

소방청은 이번 사고를 겪고서야 리튬 배터리 화재 대응과 금속 화재 소화기 기준 도입을 위해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전용 소화기 도입에 그치지 말고 리튬 등 금속 화재 발생 물질에 대한 안전 기준도 강화하고, 제조 공장과 대량 소비처를 특별 소방관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사고 위험을 알고 있고, 이미 사고가 빈발했는데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