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피스카스와 우리의 시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보름 동안 남편과 함께 핀란드·스웨덴 정원 견학을 다녔다. 내가 가고 싶은 정원은 많았지만 정작 남편은 딱 한 곳만을 원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약 5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피스카스(Fiskas)란 마을이다. 피스카스는 1649년 대장간이 생기면서 형성됐다. 1800년대에는 구리가 채굴되어 인구가 10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우리가 잘 아는 주황 손잡이의 가위와 정원용품을 생산하는 피스카스 회사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피스카스 마을의 첫인상은 웅장한 물소리였다. 북동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어 마을로 그 물길이 흐른다. 공장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낙차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리면서 생긴 물소리였다. 19세기, 아마도 이곳은 저수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쇠를 다듬는 망치질 소리가 마을을 꽉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구리 채굴이 끝나고 피스카스 마을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아직도 이곳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가구 제작 회사 니카리 등이 힘을 합해 피스카스는 공예와 예술의 마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아트 전시장과 공예관으로 바뀌었고, 마을에 남겨진 빈집들을 활용해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1년 간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제공했다. 그리고 2년마다 비엔날레를 여는데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피스카스를 찾아온다.

우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호텔과 식당이 있는 마을 중심에서 1박을 했다. 물소리로 우렁찬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은 애당초 내 집 안에 가꾸는 정원보다 자연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차경을 즐겼다. 이 낯선 핀란드 피스카스에서 자꾸만 우리의 시골이 떠올랐다. 인구소멸로 우리의 시골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혹시 어쩌면 이 피스카스에 우리 시골을 살릴 힌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