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 “내가 서 있는 곳 알아보는 게 곧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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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방송국 공개홀이던 높이 10m 전시장을 꽉 채운 문장들 사이에 강익중(64)이 섰다. 권근영 기자

방송국 공개홀이던 높이 10m 전시장을 꽉 채운 문장들 사이에 강익중(64)이 섰다. 권근영 기자

“파 송송 잘 끓인 라면을 당할 음식이 없다.”
“인생은 누구나 처음이라 전문가가 없다.”

10m 높이 대형 전시장에 색색의 문자가 꽉꽉 들어찼다. 강익중(64)이 20년 넘게 비망록처럼 적었던 ‘내가 아는 것들’ 3000자, 200문장이다.

강익중이 고향 청주로 돌아왔다. 1960년 충북 청원군(지금의 청주시) 옥산면에서 태어난 그의 40년 화가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 ‘청주 가는 길: 강익중’이 청주시립미술관에서 9월 29일까지 펼쳐진다.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 10년을 기념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미니카도 붙였다. 3인치 그림 콜라주 ‘삼라만상-해피월드’ 부분. 권근영 기자

아이가 가지고 놀던 미니카도 붙였다. 3인치 그림 콜라주 ‘삼라만상-해피월드’ 부분. 권근영 기자

강익중은 ‘3인치 화가’다.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후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떠났다. 채소 가게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그렸다. 이런 환경을 이기려 고안한 가로·세로 각각 3인치(약 7.6㎝) 손바닥만한 정사각 캔버스가 그를 화가로 세웠다. 지난 4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나중에 돈이 생기면 큰 그림에 옮기려고 작은 캔버스를 만들어 오가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그렸다”고 말했다.

“첫해에 1000개 정도 그리자 전시 제안이 왔다. 1000개가 1만 개가 되고 2만 개가 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시간의 기록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쁜 시간, 나쁜 순간이 없듯 나쁜 그림도 없다. 그저 순간일 뿐이고, 그림일 뿐이다.”

철조망 위엔 실향민들이 그린 그림을 붙였다. 권근영 기자

철조망 위엔 실향민들이 그린 그림을 붙였다. 권근영 기자

매일의 일기 같은 3인치 캔버스가 모여 ‘삼라만상’이 됐다. 캔버스에는 아이가 갖고 놀던 미니카, 길거리에서 주운 로봇 장난감 따위를 붙이고 뒷면엔 작은 스피커를 달았다. 노래하는 그림이다. 방학이면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팔았던 가짜 명품 시계도 붙였다. “9달러에 떼다가 12달러, 깎아 달라고 하면 10달러에 팔았다. 바로 뒤에선 전수천 형이 선글라스 장사를 했다. 화장실 갈 땐 서로 자리 봐줬다”고 돌아봤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문을 연 1995년, 전수천(1947~2018)은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를 출품해 특별상을 받았다. 강익중은 바로 뒤인 1997년, 3인치 그림들로 특별상을 받았다.

강익중은 그림 수집가다. 남의 그림을 잔뜩 모은다. “혼자 그리다 보니 심심하더라. 이왕 할 바에는 같이 하자 해서 아이들에게도 시켜보고, 아이들 꿈도 모아보고. 세계 곳곳에서 모은 아이들 꿈 그림만 100만 장이 넘는다.” 실향민들의 그림도 모았다. 그가 ‘최고의 작품’이라 꼽는 그림들이다.

“이북5도민 체육대회 등 행사 때마다 따라가 부탁드려서 6000점 정도 모았다. 어린 시절 사시던 동네 풍경화, 약도, 자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등을 그렸다. 피카소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달항아리 화가다. “위와 아래를 각각 만들어 불을 통과한 뒤 하나로 이어지는 달항아리는 우리 민족을 닮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텅 비어있음이다. 누구나 지도를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지도가 아무리 좋아도 좌표가 없으면, 내가 있는 곳을 모르면 안 된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것이 문화고, 철학이고, 예술이다. 진정한 문화는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것. 좌표를 찍는 마음으로 달항아리를 그렸다.”

강익중은 그 너머를 상상하는 사람이다. 2005년 광화문 복원 당시 달항아리를 그린 가림막 ‘광화문에 뜬 달’을 세워 가림막 너머를 상상하게 했다. 3인치 캔버스는 그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됐다.

“예술가는 낚싯대를 던지고, 과학자는 잡은 고기를 끌어올리고, 경제인은 그 고기를 자르고, 정치인은 분배해 준다. 예술가가 (낚싯대를) 던지지 않으면 (고기를) 끌어올 수도 자를 수도 나눌 수도 없다. 예술가가 선봉장이 되어 상상력으로 세계인을 끌고 간다. 그게 예술가의 몫이고 할 일이다.”

그런 그가 꼽는 최고의 예술가는 반가사유상을 만든 무명의 장인. “다 내려놓은 뒤 빙그레 떠오르는 그 미소는 바로 그걸 만든 분의 표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는 10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앞에 ‘네 개의 신전’을 세운다. ‘아리랑’ 가사를 한글·영어·아랍어·상형문자 이렇게 네 개의 언어로 각 탑을 덮고, 안에는 아프리카 난민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을 비롯해 전 세계 아이들의 꿈을 그린 그림으로 채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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