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과 딴살림 차린 아내…그에겐 "고통이자 매력"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홍기원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 인터뷰

김수영(1921~68) 시인이 시에서 ‘여편네’라 멸칭하고 때론 ‘아내·처’라 썼던 뮤즈, 1927년생 김현경 여사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김수영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의 절친인 이종구(1921~2004)와 살았던 전력 때문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남한에선 포로로 붙잡혀 2년 넘게 수감된다. 전쟁의 트라우마에 아내를 잃은 슬픔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김수영의 선택은 김현경이었다. 돌아온 김현경과 재결합한 뒤 왕성하게 시와 산문, 평문을 쓰고 번역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다 교통사고로 비명에 떠났다. 이후 김현경은 김수영의 손때가 묻은 모든 자료를 이고 지고 다니며 보존했고, 그의 흔적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김수영문학관에 기증했다.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제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김현경 여사에게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가 인터뷰한 게 지난달 중순이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더 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 연재 중인 '더, 스토리-백년의 사랑(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16)' 첫 회가 나온 뒤 출판사 '어나더북스' 권무혁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홍기원(64)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김현경 여사를 1년 넘게 인터뷰해 정리한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더, 스토리 - 백년의 사랑

김현경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중일전쟁과 해방·한국전쟁까지 온 몸으로 겪고 문단사에 길이 남을 시인의 아내로서 지금까지 생존한 엘리트 여성이다. 더 늦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던 차, 누군가 이미 그런 작업을 해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도했다.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의 저자 홍기원 이사장을 지난 20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홍기원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종호 기자.

홍기원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종호 기자.

2021년 출간한  『길 위의 김수영』 책을 김현경 여사께 드리러 갔다가 인터뷰를 결심했다고요. 
김수영 본가 유족을 10년 넘게 만났습니다. 본가 쪽 이야기를 들어서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사업 때 『길 위의 김수영』을 냈습니다. 아무래도 당사자시고 아직도 생존하고 계시는 사모님한테 이 책을 전달해야 되겠다 싶어 찾아뵈었죠. 김현경 여사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많았는데, 서운하다는 말씀은 일절 없이 밥을 차려주시고 수고했다 하시더라고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모던 걸,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인데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됐죠. 고은 시인은 "김수영에게 김현경은 고통이자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수영 시인이 좋아했던 매력이 뭘까, 진심으로 그것을 추적하고 싶다. 김수영이 정말 사랑했던 유일한 여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차이가 클 겁니다.
김수영의 시 '너를 잃고' 육필원고. 김현경이 이종구와 살던 1953년의 작품. 김수영은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라고 표현했다.

김수영의 시 '너를 잃고' 육필원고. 김현경이 이종구와 살던 1953년의 작품. 김수영은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라고 표현했다.

사실 문단에서 김현경 여사를 안 좋게 보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분에겐 발언 기회가 없었겠다는 느낌도 있어요.
그럼요. 김수영이 가장 필요할 때 이종구와 살았으니 거기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만만치 않죠. 상당히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부분도 많고요.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이 1955년 4월에 김현경 여사와 왜 다시 손을 잡았을까. 고은 시인 말대로 “고통이자 매력”인데, 그 매력 때문에 딴 남자에게 살러 간 여자와 다시 손을 잡은 거라고 저는 생각했고, 그 내적 동기와 힘을 솔직하게 추적해보자. 그래서 이번에 7개의 사랑의 장면으로 요약되는 스토리가 나온 거죠.
어떠세요? 김현경 여사님 인터뷰해보시니까 다시 손잡을 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드세요?
20대의 그 김현경을 저도 한번 만나보고 싶더라고요. 98세인데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 뭐 하나라도 항상 신경 쓰고 하는 모습. 생에 대한 의지가 보이고 끝까지 미(美)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어찌 보면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그런 모습 아닐까요? 김수영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노래했듯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라는 부분처럼 영원한 사랑을 총괄하는 그런 모습을 김수영 시인은 좋아한 거 아닌가, 저는 그렇게 느낀 거죠.
근데 저는 김현경의 선택이 한편으로 이해도 되더라고요. 당장 먹고 살려면 말이죠. 
6.25의 피난 시절, 그 궁핍한 시절에 일어났던 일들이기 때문에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잖아요. 김수영 시인은 문학가 중에서 6.25를 가장 격심하게 겪었던 사람이에요. 북에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혼란기를 타 탈출해 200km를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고요. 그런데 북에서 내려온 빨갱이라고 서울 중부서에서 2주 만에 완전히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이빨이 다 나갈 정도로 고문을 받았잖아요. 포로수용소에서는 반공포로로 몰려서, 인민재판을 받다가 죽기 직전에 탈출하잖아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매일 아침 반공 포로들의 토막 시체가 나오는데, 그런 상황에서 예민한 감성의 시인이 살아남은 거죠. 
그러니까 술만 먹으면 그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이겨나갈 수가 없는 거죠. 박인환(1926~1956) 시인은 6.25의 고통을 김수영 시인만큼 그렇게 격렬하게 겪지 않았지만, 못 먹는 술을 먹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어요. 자유를 노래하던 사람들도 그 이후로 자유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정도의 고통을 받고도 김수영 시인은 다시 살아나잖아요. 김수영 시인이 다시 살아난 배경에는 어머니와 누이들의 절대적인 보살핌과 사랑이 있었고, 재결합 후에는 김현경 여사가 13년간 주사를 다 받아주는 속에서 폭력의 트라우마를 결국은 이겨낸 거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위대한 시가 가능한 거였죠. 절망에 빠져버렸으면 불가능한 거죠.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 표지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 표지

※더 깊이있는 내용이 담긴 인터뷰 전문은 7월 4일 더중앙플러스 '더, 스토리-백년의 사랑'에 공개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