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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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50대 후반에서 60대라면 이제는 작고한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를 섭렵한 독자들이 꽤 될 거다. 아직도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극 초반 유비의 외모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한 ‘귀는 커서 어깨까지 내려왔고, 팔이 길어 손이 무릎을 지나고…’ 등등을 그대로 그려서 조합하니, 유비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인들의 과장을 풍자한 고 화백 특유의 위트가 돋보이는 장면인데, 심리학 비전문가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심리학 논문을 읽을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오른다. 심리학의 연구결과들을 조합하면 과연 사람의 전체적 모습은 어떻게 될까?

그중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의 공존이다. 행동 편향(action bias)은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행동을 취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통계적으로 페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는 중앙에 서서 막는 것이 오히려 막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키퍼는 오른쪽이나 왼쪽 측면 하나를 선택한다. 중앙에 서 있다가 방어에 실패하면 가만히 있다가 잘못된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후회, 즉 ‘부작위에 따른 후회’(inaction regret)가 측면 방어를 선택했다가 실패했을 때의 후회, 즉 괜히 움직여서 실패했다는 ‘작위 후회’(action regret)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중앙에서 방어하다 실패했을 때 겪게 될 팬들의 비난이 측면 방어를 하다 실패했을 때 겪게 될 비난보다 크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인지적 현상의 결과인지, 아니면 보상체계(payoff structure) 왜곡에 따른 합리적 선택의 결과인지 애매하다.

조직 존재감 과시 위한 행동 편향
복지부동이 낫다는 부작위 편향
둘 다 잘못된 보상체계 작용 때문
보상체계 바꿔야 공공부문 변화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또는 inaction bias)은 반대로,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적 편향이다. 대표적 사례가 NBA 농구 통계에 따르면 시소게임 막판에 심판이 휘슬을 불 확률이 50% 감소하는 현상이다. 결정적 순간에 괜히 잘못 개입했다가 비난의 대상이 될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 역시 인지적 편향보다는 보상체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어찌 보면 비겁한 행위가 최적의 선택이다.

재미있는 건 이 반대되는 두 편향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 따르면 행동 편향은 상황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할 때 작용하는 반면, 부작위 편향은 상황이 분명하고 윤리적인 상황에서 주로 작용한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공존하는 두 편향 중 어떤 것이 작용할지는, 결국 그게 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 보상체계라는 비심리적 요인과 관련될 수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정부 부처를 예로 들어 보자. 대표적으로 행동 편향이 심한 곳이 교육부다. 고교생이 무슨 실험실의 청개구리도 아닌데, 대학입시 제도는 본고사, 본고사/예비고사, 학력고사, 다시 본고사, 수능 및 수시/정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 왔다. 과거 이해찬 세대 때 미적분을 교과 과정에서 빼더니 결국 부활했다. 그러다 이번에 수능에서 다시 제외한단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는데, 실상은 오년소계(五年小計)가 된 것이다. 왜 그럴까? 교육부의 수장은 부총리로, 인원 및 예산에서 가장 큰 부처다. 그렇다 보니 뭔가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행동 편향이 조직의 생존논리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그 외 대부분의 부처는 부작위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 2003년 감사원이 기존 회계감사 외에 정책감사를 도입했다. 정책감사는 사후감사라는 속성상 정책 결과가 감사 대상이 된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 공무원은 속된 말로 ‘스크래치’가 나게 된다. 반대로 사후적으로 정책 효과가 뛰어나 봤자 무슨 무슨 상 하나 받고 끝이다. 보상체계가 이렇게 비대칭적이니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복지부동이 최선이다. 부작위 편향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정농단 특검의 후유증으로 잘못하면 직권남용 기소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아무리 ‘규제 개혁’을 외쳐봤자 규제의 ‘ㄱ’자도 안 바뀌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최근에는 법원마저 민감한 재판일수록 재판 기간을 엿가락처럼 늘어뜨리고 있다. 1990년대 화제의 TV 드라마였던 ‘달수의 재판’이 재연되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심리적 편향은 상당 부분 보상체계와 관련이 있다. 현재의 보상체계에서 공무원이나 각 부처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길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괴짜경제학』에서 저자 스티븐 레빗은 “결국 보상체계가 총알이며 열쇠다. 보상체계에 실제 상황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이 응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권에서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이순신 장군의 글귀를 인용했는데, 진짜 ‘재조산하’를 하려면 우리나라의 왜곡된 보상체계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 시작은 공공분야일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