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겁먹지 말기"…제지공장서 숨진 열아홉 청년 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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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전주 제지공장서 혼자 작업 중 사망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운동하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예체능 계열 손대보기….(A씨 메모 중 '2024년 목표')

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숨진 열아홉 살 청년이 생전에 남긴 메모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 공장에 취업한 지 6개월 만에 생긴 비극이다. 사고 발생 후 그의 생전 목표와 계획이 적힌 메모가 공개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4일 전주 덕진소방서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A씨(19)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팀 동료가 발견해 신고했다. 구급대원이 A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유족 "1시간 방치"…기숙사서 노트 발견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일요일인 사고 당일 오전 8시30분쯤 공장 3층 설비실에 혼자 들어갔다. 6일가량 가동이 멈춘 기계를 재가동에 앞서 맨눈으로 이상 여부를 점검하던 중 의식을 잃었다. 유족과 노동단체는 A씨가 사고 장소에서 최소 50분~1시간 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는 전남 순천의 한 특성화고 3학년이던 지난해 이 공장에서 석 달간 현장실습을 마친 뒤 올해 초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이후 수습·직무 교육을 거쳐 지난달 26일 해당 팀에 배정됐다고 한다.

A씨가 생활하던 공장 기숙사에서 그가 생전에 쓰던 노트가 발견됐다. 유족이 지난 20일 공개한 노트엔 A씨가 손으로 쓴 올해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는 인생 계획으로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 빼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편집 기술 배우기' '악기 공부하기'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등을 적었다.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유족·민노총 "명백한 인재" 

다른 페이지엔 월급·생활비·적금 통장 정리하기,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것, 자산 모으기 계획 등이 담겼다. 이와 함께 '조심히 예의 안전 일하겠음. 성장을 위해 물어보겠음. 파트에서 에이스 되겠음. 잘 부탁드립니다. 건배'라는 메모도 나왔다. 유족은 A씨가 회사 환영회를 앞두고 적은 글로 보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지난 2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백한 인재"라고 주장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건강했던 A씨가 입사 6개월 만에 사망한 점 ▶2인 1조 작업 수행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점 ▶종이 원료 찌꺼기가 부패하면서 황화수소 등 유독 가스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현장에 혼자 투입된 점 ▶고인이 방독면 등 호흡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한 점 ▶대기 측정 등 안전 교육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댔다.

A씨 유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너의 삶이 이렇게 끝나버린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 아프지만 너의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사랑을 주었는지는 잊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A씨는 외아들이다.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휴일인 지난 16일 오전 9시22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제지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A씨(19)가 생전에 노트에 적은 메모. 그의 2024년 목표와 인생 계획 등이 손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사진 A씨 유족

회사 측 "사고 위험 없었다" 

회사 측은 "유해 가스 노출에 대한 사고 위험이 전혀 없었다"며 "사고 직후 회사와 안전보건공단이 각각 유해 가스 농도를 측정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설비 이상 문제로 작업에 투입했다면 2인 1조로 하는 게 맞지만, 단순히 가동 전 설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순찰 업무였기 때문에 2인 1조 작업이 필수는 아니었다"며 "고인에 대한 애도와 유족 위로에 최선을 다했고, 경찰과 고용부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상준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처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회사 측이 진상 규명보다 책임 축소에 급급하다"며 "A씨 유족과 함께 25일 오전 11시 해당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전주 덕진경찰서는 A씨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고용부는 A씨 부검 결과 등이 나오는 대로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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