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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정책의 진짜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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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 시절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지자체별로 가임기 여성인구 수를 한 자리까지 표기하고, 분홍색 농도로 순위를 구별한 지도가 포함됐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저고위)나 여성가족부가 아닌 행자부가 나선 것은 지자체 간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만 보느냐”는 항의가 빗발쳤고, 홈페이지는 하루 만에 폐쇄됐다.

2017년 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가임거부 시위를 열고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반대 및 홍윤식 행자부 장관과 안승대 자치행정과장을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가임거부 시위를 열고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반대 및 홍윤식 행자부 장관과 안승대 자치행정과장을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헛발질 거듭해 온 저출생 대책
이번엔 선택과 집중으로 눈길
진짜 반전은 구조 개선으로 가능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저고위 회의를 한 번도 주재하지 않았다. 취임 첫해 간담회 한 번 참석한 게 전부다. 대통령은 관심이 없는데 조직은 정책을 계속 만들어야 존재할 수 있으니 짜깁기가 관행이 됐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무관심 속에서 합계출산율은 빠르게 하락했다. 취임 2년 차인 2018년 처음으로 합계출산율 1명이 깨졌고, 정권을 넘겨준 2022년엔 0.8명마저 무너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가 다한 저고위 부위원장 자리를 반년 넘게 비워뒀다. 그러다 나경원 전 의원을 임명했는데, 여당 당대표 선거에 나가지 못하도록 회유하는 차원이었다. 나 전 의원이 갈등 끝에 사임했고, 후임으로 임명된 김영미 동서대 교수도 1년 만에 경질됐다. 김 전 부위원장 임명 후 직접 주재한 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은 “정책만 갖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막말로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아도 아이들 밝게 크게 하는 게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만 취학 시기를 1년 당기자거나 쪼이기 댄스, 정관 복원 수술비 지원 등이 저출생 대책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나마 지난주 나온 새 대책은 상당한 반전이었다. 부총리급 컨트롤타워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잠정)로 정한 것은 기존의 출산 장려책에서 벗어나 저출생 문제를 인구 전략의 시각에서 다루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출산·육아 휴가를 더 오래, 자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보육·주택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 집중한 세부 대책도 눈에 띈다. 정작 맞벌이 부부는 소득제한에 걸려 지원 대상에서 빠지거나, 아이가 생겨도 넓은 집으로의 이주는 고려하지 않는 등 앞뒤 안 맞는 제도에도 손을 댔다. 주차·공원 입장·세제 등 작은 불편에도 신경 썼다. 아이 낳으라고 다그치는 방식에서 ‘이렇게 개선됐으니 한번 낳아볼래’라며 유혹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조짐이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심층보고서를 통해 출산율이 올라가는 시나리오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이 중 가족 관련 정부지출(0.055명), 육아휴직 실질 사용률(0.096명), 청년층 고용률(0.12명)을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올리는 정책의 효과를 0.27명으로 분석했다. 수리적·통계적 분석에 기초한 전망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정부가 내놓은 단기 대책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방향으로 속도를 높여간다면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명을 회복한다는 반전의 희망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 사회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최소치인 대체 출산율은 2.1명이다. 오랫동안 가족 친화적 정책을 펴 온 유럽의 국가들도 그 문턱에서 효과가 떨어져 출산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핀란드 가족연맹 인구연구소 안나 로트키르히 연구부장은 연초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나 가족 친화적 정책으로 다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보고서도 불안과 경쟁의 제거에 정책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다시 숫자를 얘기하자면 수도권 집중 완화 효과가 0.4명, 혼외출산 비중 OECD 평균 수준 상향은 0.16명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분석에는 빠졌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도 결혼과 출산의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효과가 가장 큰 정책은 모두 장기 과제로 돌렸다. 추진 과정에서 부닥칠 저항과 구조 개선의 비용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반전은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