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싼 밤에만 조업” 철강 등 건설 후방산업 ‘보릿고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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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호 13면

건설 경기 침체의 그늘

이달 초 국내 2위 철근 생산기업 동국제강은 연 220만t의 철근을 생산할 수 있는 인천 전기로(전기 용광로) 공장을 ‘야간 조업’ 체제로 전환했다. 재고가 쌓이고 철근 가격이 하락하자 전기료가 싼 밤에만 공장을 돌려 생산원가를 낮추려는 고육책이다. 야간 산업용 전기료는 ㎾h당 105원 정도로, 낮(208원)의 절반이다. 전기료는 철근 생산비의 10%를 차지한다. 국내 철근업체가 상시로 낮에 전기로를 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한 야간 조업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공사비 뛰자 건설업체 값싼 중국산 선호”

동국제강은 이번 조치를 통해 지난해 87.3%였던 공장 가동률을 60%대로 낮출 계획이다. 철근업계 1위 현대제철도 최근 급증하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현대제철은 인천 전기로 공장의 정기보수 기간을 기존보다 약 한 달 늘렸고, 9월부터 11월까지 당진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전체 공장 가동률을 60% 수준까지 낮출 계획이다. 철근업계의 한 관계자는 “감산 조치가 확산되면 수요와 공급 미스매치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조강(철강) 생산량은 2122만t으로, 2020년 팬데믹으로 공장 가동이 주춤했을 때(2202만t)보다도 낮다.

포스코 근로자가 용광로에서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출구)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포스코 근로자가 용광로에서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출구)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건설 경기가 침체하면서 철근·골재·시멘트 등 후방산업들이 끝 모를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생산량을 줄이고,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 경기가 살아나야 그나마 숨통이 트일 텐데, 주택은 물론 토목 공사까지 급감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47조5500억원이었던 건설수주액은 올해 1분기 34조2200억원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등 공사비가 올라 이중고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건설 경기 침체에 직격탄을 맞은 곳은 철근업계다. 수요가 줄었는데, 값싼 중국산 철근까지 밀려들고 있다.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873만t으로 2020년 602만t보다 45% 넘게 증가했다. 중국 또한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이자 국산 대비 30%가량 싼 가격을 앞세워 한국 등지로 수출에 나선 것이다.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는 “과거에는 질 낮은 중국산보다 비싸더라도 질 좋은 국산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전반적으로 공사비가 오르자 건설업체들이 값싼 중국산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산 철근 가격은 급락세다. 철근업계 관계자는 “유통가격이 올해에만 t당 약 30만원 이상 하락해 t당 70만원 선”이라며 “거의 생산원가 수준”이라고 전했다. 시멘트업계도 줄어든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줄이고 있으나 재고가 쌓이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시멘트 생산량은 1049만t으로 2020년 1분기(1042만t)와 비슷하지만, 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3% 늘어 129만t에 이른다. 시멘트업체 관계자는 “성수기였던 봄철에도 판매량이 저조해 재고가 더 늘어나고 있다”며 “시멘트 수요가 적으니 레미콘 업체들까지 줄줄이 고전 중”이라고 말했다. 쌍용C&E와 한일시멘트는 지난해 각각 85%, 73%였던 공장 가동률을 올해 1분기 각각 77.4%, 61.7%까지 낮췄으나 재고자산은 지난해 말 대비 각각 18.8%, 6%가량 늘어났다.

“올 건설수주액, 전년비 10% 낮아질 듯”

굴착기 등 건설장비 제조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HD현대건설기계는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8%, 영업이익은 33% 감소했고, 두산밥캣 또한 매출액이 0.4%, 영업이익은 12% 줄었다. 불황이 심각하던 지난해보다는 나아졌다는 평가지만 본격적인 회복은 2026년께나 가능하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이들 업체들은 국내 부진을 만회하고자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고금리로 인해 구매 이연 현상이 나타나 인도나 중남미 등 신흥시장 진출로 시장 다변화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 후방산업의 보릿고개는 그러나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건설 경기에 드리운 먹구름이 올해도 물러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주거용 건설수주액은 10조9592억원으로 10년 새 동기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수주액은 건설 경기의 선행 지표인 만큼 하반기에도 건설 경기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단 얘기다. 이지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문제로 올해 건설수주액은 지난해 대비 10%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시장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수입산 자재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영욱 대표는 “단순히 시장 원리에 맡겨 가격 경쟁으로 국내 업체들이 살아남길 바라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며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무한정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규제장벽을 세우거나, 공공수주 물량만큼은 국내 제품을 사용하는 등의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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