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즈음부터 시작되는 더위…제호탕·쌍화편으로 이겨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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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호 21면

조선후기 작가 김준근이 그린 ‘단오추천(단옷 날의 그네놀이)’.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조선후기 작가 김준근이 그린 ‘단오추천(단옷 날의 그네놀이)’.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5월 5일 어린이날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음력 5월 5일인 ‘단옷날’은 이제 기억 속의 날이 되었다. 예로부터 5는 양수(陽數)로 여겨졌고 5가 겹친 단옷날은 길일로 설날, 추석과 함께 중요한 명절이었지만 잊히고 있다. 다행히 지역 대표 단오제인 ‘강릉 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인이 전승해야 할 날이 되었다. 올여름, 기후 위기를 실감케 하는 유난하고 습한 더위가 예상된다.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 즈음 조상들은 무엇을 먹고 즐기며 여름을 준비했는지 엿보자.

강릉단오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단오 절식하면 떠오르는 수릿떡은 이름이 많다. 수리취 절편, 차륜병(車輪餠) 혹은 쑥떡(艾葉餠)이라고도 부른다. 멥쌀가루에 수리취나 쑥을 섞어 만든 절편인데 굳이 차륜병이라 한 것은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내기 때문이다. 단옷날은 수릿날이라고도 하는데, 수리는 우리말의 수레를 뜻한다.

그런데 수리취와 쑥은 다르다. 수리취는 취의 일종으로 ‘떡 취’가 바로 수리취의 별명이다. 쑥처럼 떡에 넣는 취나물이 바로 수리취로 수리취 찰떡, 수리취 절편, 수리취 팥떡 등을 만들어 먹는다. 수리취의 강한 향으로 떡을 만들면 좋다.

여러 약재를 넣고 젤리처럼 만든 한식 디저트 ‘쌍화편’. [사진 온지음]

여러 약재를 넣고 젤리처럼 만든 한식 디저트 ‘쌍화편’. [사진 온지음]

단오에는 새로 수확한 앵두를 천신(薦新·하늘에 지내는 제사)하고 단오 고사를 지내 집안의 평안과 오곡의 풍년, 자손의 번창을 기원했다. 이 앵두로는 앵두편도 만들어 즐겼다. 앵두편은 떡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아니다. 서양 젤리에 가까운 과일편이다. 과일편은 오미자, 살구, 딸기, 앵두 등 온갖 종류의 제철 과일로부터 우선 과즙을 얻은 다음, 여기에 녹두 전분을 넣고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졸여 엉기게 한 다음 차게 식혀 낸다. 서양의 과일 젤리는 과일즙에 동물성 젤라틴을 사용해 굳혀 질감을 야들야들하게 한다. 반면 한국의 앵두편은 식물성 전분을 이용해 엉기게 한다. 이때 가장 좋은 질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녹두로부터 얻은 전분이다. 그러니 동물성 단백질인 젤라틴으로 굳혀낸 서양의 과일 젤리와는 그 부드러운 맛에서 격이 다르다.

앵두편은 투명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내 가슴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으며 한식을 사랑하고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비교적 쉽게 엉기는 서양 젤리와는 달리, 녹말은 엉기게 할 때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해야 하고, 마지막 뜸을 정성껏 잘 들이지 않으면 맑고 투명한 색을 낼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젊은 셰프들이 앵두편에서 착안해 앵두 대신 여러 약재를 넣어 새로운 디저트로 탄생시킨 쌍화편을 만났다. 처음 쌍화편을 만났을 때는 디저트의 나라 프랑스를 이긴 기분이 들었다.

여름철 약처럼 마시는 전통 청량음료 ‘제호탕’. [사진 온지음]

여름철 약처럼 마시는 전통 청량음료 ‘제호탕’. [사진 온지음]

여름이 다가오는 단오에는 이름도 생소한 제호탕(醍醐湯)을 먹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조지’에 단오절식으로 ‘수릿떡 만들기(車輪法方)’와 ‘제호탕 만들기(醍醐湯方)’가 세세하게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 내의원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제호탕을 만들어 진상했고, 의관들은 간혹 개인적으로 만들어 주고받기도 했다 한다.

내의원에서 만들었다니 음식과 약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름을 준비하는 건강음료였던 셈이다, 연기에 그을려 말린 검은 매실 가루인 오매육(烏梅肉)에다 초과(草果), 백단향(白檀香), 사인(砂仁)을 곱게 가루 내어 꿀에 재워 끓였다가 냉수에 타서 먹는다. 제호탕은 단오부터 그해 여름까지 내내 시원한 물에 타 마시면 더위를 없애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게 하는 서양 탄산음료와는 차원이 다른 여름철 음료였다.

요즘 우리는 더우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찾지만, 조상들의 더운 날 친구는 단연 부채였다. 최근 인기 있는 손 선풍기는 부채의 진화로 보인다. 그러나 손부채의 아름다움이나 풍류는 사라져 아쉽다.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 무렵이면 공조와 지방관아에서 부채를 만들어 조정에 올리면 왕은 신하들에게 하사하고, 신하는 아전들에게 고루 나눠 주었다. 그리고 주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부채를 주었다.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했다.

손윗사람이 부채 나눠주는 풍습도

『삼국사기』에는 “고려 태조가 즉위할 때, 견훤이 공작선(孔雀扇)과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공작선이 바로 부채다. 송나라의 손목이 쓴 『계림유사』에는 “선을 부채라 한다(扇曰孛采)”며 우리말 ‘부채(孛采)’라고 썼다. 또 송나라 사신인 서긍(徐兢·1091∼1153)의 『고려도경』에는 부채 중에서도 쥘부채(摺扇)는 특별하며 고려의 특산품이라 했다. 요즈음 부채는 풍류를 담은 아름다운 문화상품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단옷날은 특히 여성들의 명절이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여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도 뛰면서 즐겼다. 이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하나 있다. 조선 후기 김준근이 그린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오른쪽 상단에 ‘단오추천(端午鞦韆)’이라는 표제가 보인다. ‘단옷날의 그네 놀이’라는 뜻이다. 왼쪽에는 ‘조선원산항김준근’이라고 하여 이곳이 원산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이 놀러 나가는데 무엇보다 먹거리가 빠질 리 없었다. 역시 음식을 준비해 와 팔고 있는 듯한 노파의 모습이 왼쪽에 보인다. 음료수를 담은 조그만 항아리도 보이고, 수릿떡 등이 놓여진 소반도 보인다. 이는 단옷날 주로 여성들이 그네를 타며 음식을 먹고 즐기는 풍경이다. 한편 소나무 뒤쪽에는 유일한 남성이 숨어 있는 듯 엿을 팔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또 그네 놀이를 구경하거나 노파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 손에는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색감의 부채가 들려 있다. 그녀들의 패션 아이템인 셈이다. 주로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양반사회의 풍류를 다룬 신윤복(1758~?)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이라는 잘 알려진 그림보다 좀 더 생생하게 일반 서민들의 단오풍경을 보여주어 정겹다.

이번 단오엔 K컬처를 보여주는 부채를 장만해 여름 동안 손 선풍기 대신 들고 다녀보면 어떨까. 게다가 서양 탄산음료 대신 시원한 제호탕과 몸에 좋은 한식 디저트인 쌍화 편으로 더위를 이겨보면 더 좋지 아니할까.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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