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국민○○’란 굴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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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호 29면

민세진 동국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국민에게 높은 인지도를 갖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거나 큰 인기를 끈 대상을 ‘국민○○’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타자, 심지어 국민여동생까지 대중의 관심을 비즈니스 기반으로 하는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 다양한 ‘국민○○’들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의미였고, 그러한 칭호를 받은 사람들도 아마 국민○○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만큼은 국민의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국민앱이라 불리는 플랫폼 서비스의 사업자들을 보며 최근에 든 생각이다. 이들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이목이 집중되는데, 긍정적인 경우는 드물다. 배달의민족은 가맹점에게 받는 수수료를 배달 주문 뿐만 아니라 포장 주문일 때에도 받기로 하면서 비난에 휩싸였다.

카카오·배민 등 플랫폼 서비스
치열한 경쟁 속 ‘국민앱’ 불리지만
논란 생기면 정부까지 걱정·개입
기업에 불필요한 짐 지워선 안 돼

카카오는 재작년 카카오톡 먹통 이래로 작년 내내 택시 호출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비교적 조용하던 네이버는 최근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매각하도록 압박한다는 보도 때문에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쿠팡은 물류창고 화재, 배송 기사 사망, 자체 브랜드 상품 판매 등으로 비난의 대상이더니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급속한 성장에 갑자기 동정 받는 분위기다.

단순하게만 보면 국민앱이라 불리는 건 대단히 좋은 일이다. 앱이 성공해서 많은 국민이 앱을 사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앱이 되면서 따라붙는 추가적 부담들이다. 어떤 부담은 대중적인 서비스 공급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터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대사도 있지 않은가.

다만 출생과 더불어 미래의 주인이 결정되는 왕관과 달리 비즈니스 세계에서 1인자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심지어 1인자의 왕관을 쓴 후에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국내 검색 서비스 시장의 30여 년 역사를 네이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으로 한글 검색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 1995년이다. 이후 한동안 야후 같은 외국 검색 서비스와 다음 등의 국내 서비스가 대결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1999년 설립된 네이버가 약진하며 다른 서비스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2004년에 배우 전지현을 쓴 네이버 광고는 효과 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마케팅 사례였다. 2009년 엠파스가 네이트로 통합되고 2012년 야후가 국내 서비스를 접는 등 많은 변화를 겪은 중에도 네이버의 독주는 지속됐다. 하지만 2009년 스마트폰이 국내에 도입되고 급속히 확산하면서 검색 서비스 시장에도 근본적인 지각 변동이 생겼다. 바로 유튜브가 검색에도 적극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국민앱이라 불리는 다른 서비스들의 성장 과정도 제각기 독특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치열하게 경쟁하여 성장했고, 어느 한 순간도 안주할 수 없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꿔가며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를 소비자는 누리고, 그들은 돈을 번다. 그들이 견뎌야 되는 왕관의 무게는 경쟁의 압박과 1인자로서 먼저 맞는 매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서비스가 마치 공짜로 제공되어야 마땅한 것처럼 언론이 나서 비난을 부추기고, 급기야 정부까지 불필요한 걱정과 개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년 전에 인터넷 유머라며 본 내용이다. 배우자가 바람이 났을 때 나라별로 다른 상대 배우자의 반응을 모은 것이었다. ‘프랑스: 배우자의 정부를 죽인다’ ‘이탈리아: 배우자를 죽인다’ ‘스페인: 둘 다 죽인다’ ‘미국: 변호사를 물색한다’ 등이었는데 한국은 ‘정부가 책임져라고 시위한다’였다. 정말로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무슨 일에라도 정부가 나서주길 바라는 정서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정부에 대해 신뢰가 그만큼 높은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여기저기 남발되며 식상해진 탓도 있지만,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 국경의 울타리를 넘는 글로벌 스타가 나오면서 ‘국민○○’란 유행어는 점차 사라졌다. 국민앱들도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하면 국민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 전에라도 불필요한 짐은 지우지 않으면 좋겠다. 그나마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이러한 혁신 기업들의 등장과 성장이기 때문이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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