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유머 담긴 체험, 일의 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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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호 25면

어떤 동사의 멸종

어떤 동사의 멸종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이것도 그냥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다른 일보다 특별히 더 좋을 것도 또 특별히 더 나쁜 것도 없어요. 이제 직접 전화받게 될 테니까 거짓말 안 할게요. 처음엔 일 정말 힘들어요.”

콜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지은이가 교육 과정에서 들은 말이다. 그가 할 일은 원청업체인 대형마트의 고객 상담사 역할. 이후 그가 보고 듣고 겪고 전하는 내용은 ‘일 정말 힘들어요’의 면면을 생생히 알려준다. 상품 교환이나 환불 대신 ‘시간’을 돌려달라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진상 고객과 통화하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화를 폭발하며 ‘의거’를 일으키는 동료들도 나온다.

이 책은 이를 포함해 네 곳의 일터와 일에 대한 르포다. 지은이의 체험이 녹아 있는 것은 물론 그만의 문장과 시각이 때로는 시트콤을 보는 듯 다가온다. “상담사들 간의 소통은 스파이들의 접선처럼 은밀하고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우리의 교류는 대체로 산문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었다. 화장실을 오가다 잠시 마주쳤을 때 서로의 통화 대기 시간이 겹칠 때 나누는 몇 마디, 옆 사람이 진상에게 붙들려 있는 게 분명해 보일 때 보내는 안쓰러움의 눈빛과 몸짓 …”

지은이는 콜센터 상담사를 가장 힘든 일로 꼽지만, 다른 일도 쉽진 않다. 초대형 물류센터의 까대기, 즉 택배차에 물건을 싣거나 내리는 일은 처음 하루 하고는 일주일을 앓아 누웠단다. 그에 따르면 상하차 작업은 시지포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반복적인 동작의 연속이지만, 성과가 확연히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보수가 센 야간 작업을 자원한 지은이는 일을 마치고 새벽에 맞는 햇살을 “비타민D와 꿀을 섞어 만든 조명탄”이 눈앞에서 터지는 것에 비유한다. 물류센터를 ‘최고의 일출명당’으로 꼽는 이유다.

쇼핑몰 한식뷔페 주방도 있다. 경험자 아니면 부르지 않는 식당업계에서 무경력자인 그를 받아준 데서 짐작하듯, 일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그만두는 곳이다. 어떻게든 일이 굴러가게 하려는 책임자, 곧 그만두리라는 예상을 뒤집는 경력단절 주부 출신 직원 등 일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드라마 못지않게 인상적으로 전해진다. 40대인 지은이가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며 받아준 곳도 있다. 은퇴 후 재취업자를 비롯해 모두 나이든 남성들로 구성된 청소팀이다. 이곳에서도 지은이는 앞서와는 또 다른 드라마적 순간과 삶의 면면을 포착해 전한다.

일에 대한 생각도 번득인다. 지은이가 예로 든 청소 작업은 한편으로 누구도 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서류작업 등을 비롯해 일하는 사람들을 실존적 위기에 빠트리는 ‘가짜 노동’과 다른 점이다. 앞서 콜센터의 일을 지은이는 “땜질”로도 표현한다. 원청업체의 업무 프로세스 등 융통성 없거나 엉성한 틈새를 메꿔서 시스템의 대대적 수리 없이도 굴러가게 한다는 점에서다.

이 책은 ‘일’을 다룬 지은이의 세 번째 책이다. 2013년 나온 첫 책은 꽃게잡이를 비롯해 고되기가 만만찮은 여러 일터의 경험을 담았다. 당시 『인간의 조건』으로 붙여진 제목은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퀴닝』으로 바뀌었다. 이런 전작들에 비하면 신작이 다룬 네 가지 일은 독자들의 일상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 한데 책에 인용된 전망이나 수치에 따르면, 대체 확률이 높은 직종들이기도 하다. 신간의 부제가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인 이유다.

지은이는 의뭉스럽게도 ‘작가’라는 일을 여기에 덧붙인다. 실제와 상상을 뒤섞은 듯한 마지막 장의 이야기는 문학을 꿈꾼 청년이 르포를 쓰게 된 내력과 함께 장차 인공지능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독자 맞춤형 소설을 쓰는 시대에 인간 작가가 처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소재도, 문장도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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