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엔 500원뿐이지만…한달살기 마지막, 대만에서 얻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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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⑭ 대만 타이베이

대만 타이베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통하는 시먼띵. 서울의 명동과 홍대를 반반 섞어 놓은 분위기다.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을 걷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들뜬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대만 타이베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통하는 시먼띵. 서울의 명동과 홍대를 반반 섞어 놓은 분위기다.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을 걷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들뜬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10여 년 전 해외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며 세웠던 목표가 하나 있다. 평생 해외의 100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자는 것인데, 벌써 48개 도시를 채웠으니 예순 전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을 여행처럼 산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팔자 좋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늘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보낸 한 달은 특히 불행에 가까웠다.

아내의 여행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을 때 불안을 잠재워 준 샤오룽바오. 타이베이에서 단 하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여전히 샤오룽바오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을 때 불안을 잠재워 준 샤오룽바오. 타이베이에서 단 하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여전히 샤오룽바오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2015년 4월 타이베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여행 내내 나는 우울했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2년에 걸친 세계 일주의 마지막 도시가 타이베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직업도, 집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전세금을 탈탈 털어 무작정 세계 일주에 나섰던 어느 부부의 결말이구나 싶었다.

통장 잔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내 걱정도 모르고 종민은 천하태평, 날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를 졸랐다. 마침 숙소 1층에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만두를 빚는 식당이 있었다. 평소 만두에는 전혀 흥미를 없었지만, 타이베이에서 이 편견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 뜨겁고 느끼한 만두소와 육즙에 내 미각은 어느새 중독되고 말았다. 나는 만둣집으로 날마다 오픈런을 했다. 얇은 피 안에 육즙을 가득 품은 이것이 샤오룽바오라는 것을 알려준 이는 종민이었다.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궁핍했지만, 샤오룽바오만은 끊지 못했다. 샤오룽바오를 먹을 때만큼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시나마 잊었던 거 같다.

타이베이의 노점 식당 거리.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야 더 활기를 띠는 장소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타이베이의 노점 식당 거리.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야 더 활기를 띠는 장소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대만에서도 우리는 글을 썼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대만 출판사 여러 곳을 수소문해 원고를 보냈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낡은 노포를 찾아다니며 배를 채웠다. 타이베이에는 30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대를 이어온 식당이 많았다. 장사가 잘되면 분점을 내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기 마련일 텐데, 그렇지 않은 식당이 더 많이 보였다. 한번은 그 이유를 주인장에게 물으니.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같은 자리에서 단골을 맞이하고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타이베이의 노포에는 그만의 소박한 맛과 멋이 묻어 있었다. 타이베이에 머물며 신세 한탄을 달고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눈앞에 주어진 행복을 바라보는 법을 뼈저리게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하늘에서 본 타이베이 시내. 중앙의 초고층 건물이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Taipei 101'이다. 사진 대만교통부관광서

하늘에서 본 타이베이 시내. 중앙의 초고층 건물이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Taipei 101'이다. 사진 대만교통부관광서

귀국해 통장을 보니 500원이 안 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돈 걱정하지 말라던 은덕을 믿고 2년 동안 한 번도 통장을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남김없이 써 보겠다’를 의미할 줄이야.

풍족하고 행복한 추억은 없지만, 그 뒤로도 우리는 여러 차례 대만을 찾았다. 대만을 갈 때마다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라는 속담을 자주 떠올린다. 대개의 한국 여행자들은 짧은 여행으로만 대만을 즐기는데,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타이베이‧가오슝‧타이난‧타이중까지 대만의 4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해 본 결과, 대만은 장기간 여행에서 더 빛을 발하는 여행지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용산사.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365일 기도를 드리는 현지인으로 가득하다. 특이한 점은 도교, 불교, 유교뿐 아니라 민간신앙까지 모두 모신 다종교 사원이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용산사.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365일 기도를 드리는 현지인으로 가득하다. 특이한 점은 도교, 불교, 유교뿐 아니라 민간신앙까지 모두 모신 다종교 사원이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일단 생활비가 저렴하다. 물가는 서울의 약 3분의 2 수준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하면 방값은 다소 높은 편이다. 우리는 동남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한 달 방값 예산으로 대략 500달러를 잡는다. 70만원이 안 되는 돈이지만 수영장과 헬스장이 딸린 숙소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베이에서 500달러로 구할 수 있는 숙소는 시외의 오래된 주택 정도다. 그래도 월 5만원이면 최신식 기구를 갖춘 헬스장을 등록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꽤 높은 도시라 할 수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라서 망고‧파파야 등의 열대과일도 넘쳐난다. 11~2월에 가면 우리네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를 누릴 수 있다.

중화민국 초대 임시총통인 쑨원을 기념하는 국부기념관. 타이베이를 찾는 여행자의 필수코스로 매시간 정각에 이뤄지는 근위병 교대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중화민국 초대 임시총통인 쑨원을 기념하는 국부기념관. 타이베이를 찾는 여행자의 필수코스로 매시간 정각에 이뤄지는 근위병 교대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한국과 가까운 거리도 장점이다. 한 달 동안 한국의 일상과 완전히 분리돼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가까운 지인의 경조사를 챙겨야 할 수도 있고, 집 보일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갑자기 한국에 가야 할 때 가까운 거리는 꽤 중요한 가치가 된다. 인천에서 대만까지는 불과 2시간 30분 거리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과 비슷하다. 항공편도 많고, 편도 10만원 이하의 항공권도 수시로 올라온다. 대중교통, 병원 등 인프라도 훌륭하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만 한 곳이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데 치안이 그중 하나다. 카페에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놓고 화장실에 가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은 한국, 일본 그리고 대만 정도다.

‘도전에는 대가가 따른다’고들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으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무모한 도전 덕분에 남다른 시야를 얻었다. 이쯤 되면 대가가 아니라 보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타이베이 한 달 살기 정보

한자를 읽을 줄 안다면 타이베이 여행이 훨씬 순조로울 수 있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한자를 읽을 줄 안다면 타이베이 여행이 훨씬 순조로울 수 있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비행시간 : 약 2시간 30분
날씨 : 10월~4월 추천. 11~2월은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언어 : 중국어, 대만어
물가 : 서울의 3분의 2 수준
숙소 : 600달러 이상(시내 외곽, 집 전체)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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