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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설득의 논리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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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까지 한국에서 세금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만 논의되어왔다. 하나는 계층별 조세 부담 폭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공학이다.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종부세 완화 카드를 먼저 꺼냈던 민주당은 막상 대통령실이 종부세·상속세 완화를 포함한 세제개편에 나서겠다고 하자 하루아침에 180도 태도를 바꿨다. 종부세·상속세·금투세 완화에 반대하고 세수 결손 청문회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세금 논의의 두 가지 맥락을 편의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대승했지만 종부세 피해 지역에서는 못 이겼으니 조금 완화할 수도 있다는 미끼를 던졌다가 상대가 덥석 물면 말을 바꾸는 전술이다. 이렇게 쉽게 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계층 간 불평등 완화, 민생의 시급성, 초부자 감세 반대 등 언제든지 쉽게 들이댈 수 있는 편리한 프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걱정한다지만 앞으로 각각 2년, 3년 남았으니 그사이에 말을 바꿀 기회는 열두번도 넘게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6일 종합부동산세는 초고가 1주택 소유자와 다주택 소유자 중 보유 주택 가액 총합이 높은 경우에만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6일 종합부동산세는 초고가 1주택 소유자와 다주택 소유자 중 보유 주택 가액 총합이 높은 경우에만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 부담 과도, 임차인 전가 우려”
너무나 건조한 정부의 감세 논리
야당의 비판 프레임 극복 힘들어
성장 위한 선택이란 점 역설해야

반면 정부의 설명 논리는 너무나 건조하다. 윤석열 정부의 많은 정책이 그랬듯이, 말은 맞는 말인데 사람들에게 와 닿기에는 감동이 없고 야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 부담이 과도하고 임차인에게 전가할 소지가 있다는 말을 이해하고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세 부담이 도를 넘은 지는 한참 되었다. 하지만 세금의 성격상 과도한 세금을 내는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막연히 부자니까 그 정도 돈이야 별거 아닐 거라고 치부해버린다.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 상속세, 재산세는 세계 1위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응답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은데, 소득·자산 하위 구간으로 갈수록 더 높다. 한국에서 소득세 조세 미달자가 37%라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은 소득세를 안 내면서 이미 많이 내는 타인에게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비난하는 셈이다.

누진세와 복지국가는 단순히 부자에게 많이 걷어서 서민에게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계층 간 타협의 산물이다. 남들 안 낼 때 혼자서만 왕창 내고 욕까지 먹고 좋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거대 야당에 발목 잡혀 당장 세금을 완화할 수 없다면 하다못해 연말에 국세청장이 고액 납세자에게 감사편지라도 보내야 한다.

납세자의 정치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납세자 본인들도 권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세금이 정치적 권리의 문제라는 점은 세계사가 입증한다. 미국을 보라.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식민본국에 세금을 낼 바에는 차라리 나라를 만들겠다는 투쟁 끝에 태어난 나라가 미국이다.

지금 한국처럼 세계 최고 세금을 내면서 온갖 비난까지 듣고 선처만 바라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뉴욕대 법대의 볼프강 쇤 교수가 말하듯이, 세금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가장 거칠고 폭넓게 침범하는 방식이다. 국민이 원치 않더라도 그들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강제로 돈을 꺼내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금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조건 부자를 적대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을 이미 내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탈세자 취급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길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재정 건전성 때문에 세금을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은 편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돈이 부족하니 이미 부당하게 많이 내는 사람이 계속 많이 내라는 건 좋게 봐줘도 행정 편의적 발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반민주적 발상이다.

OECD 평균의 두 배에 해당하는 상속세가 지속되면 더 이상 대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해왔고 유일하게 대만만 중소기업 중심으로 커왔다. 성공적인 기업은 규모가 커지는 게 정상이어서 대만 같은 경우가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경영을 승계할 때 자녀들에게 n분의 1로 나누는 대만식 상속 문화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단독상속의 전통으로 기업의 규모를 유지해왔는데, 상속세 부담 때문에 대기업이 강제 분할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경제사 연구의 대가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의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제도는 인센티브의 구조를 결정한다. 그리고 인센티브의 구조는 그 경제가 성장할 것인지, 정체할 것인지, 아니면 쇠퇴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세제 정상화는 초부자감세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마중물이다. 조세제도를 개선하고 혁신과 투자에 대해 보상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경제의 쇠퇴는 정해진 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