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우리 아들만 여기 없다"는 어머니의 울부짖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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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병 훈련소에서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박모 훈련병이 지난달 13일 입영식 당시 어머니를 업고 있는 모습. [사진 군인권센터]

신병 훈련소에서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박모 훈련병이 지난달 13일 입영식 당시 어머니를 업고 있는 모습. [사진 군인권센터]

어제(19일)는 중대장의 군기훈련(얼차려)을 빙자한 시대착오적이고 잔혹한 가혹 행위로 신병훈련소 입소 10여일 만에 허망하게 숨진 박모 훈련병의 동료 훈련병들의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다. 비극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5주간의 훈련을 마친 박 훈련병도 이날 다른 병사들처럼 단 몇 시간이라도 아들과 함께하려고 차로 6~7시간 걸리는 먼 전남 나주에서 단숨에 달려온 부모님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입대 당일 엄마 아빠를 향해 어설프지만 든든한 생애 첫 "충성" 경례를 외치며 연병장에서 엄마를 업어주던 아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아들이 있어야 할 자리엔 수료식에 참석한 동료 병사 부모님이 한 송이씩 놓은 국화 250송이만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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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경찰청은 아들 사망 17일이 지나서야 가해자로 지목된 중대장을 처음 소환 조사하고, 무려 사망 24일만인 수료식 바로 전날에야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 대해 직권남용 가혹 행위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춘천지검은 19일 영장을 청구했다. 훈련병을 직접 통솔하는 조교나 소대장이 아니라 중대장이 직접 얼차려를 시키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고, 또 군경찰의 초기조사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으면서도 고의성이 인정되는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진 않았다. 과거에도 반복됐던 사안인지, 왜 유독 이 중대장이 무리한 얼차려를 했는지, 중대장이 여자임을 의식한 군의 과잉보호는 없었는지 등 사건 초기 제기된 여러 의문은 여전히 무엇 하나 밝혀진 게 없다. 군은 "경찰이 수사 중이라 아는 바 없다"는 말만 무한 반복 중이고, 경찰 수사는 비상식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침묵하던 훈련병 엄마의 편지
군 늑장대응·무책임 등 드러나
병사 인명 경시 군엔 미래 없어

아들 수료식에 참석할 수 없는 어머니는 수료식 날 "수료생 251명 중 우리 아들만 없다"며 고통 속에 편지를 띄웠다. 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된 A4 두 장 분량의 긴 편지를 읽다가 슬픔과 분노로 감정이 북받쳤다.

어머니는 아들이 쓰러진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새벽 3시쯤 아무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아들을 마주하곤 죄인처럼 회복만 기다렸다고 한다. 5시간 뒤 "열이 안 떨어져 곧 포기할 때가 올 것"이라는 의료진 설명에 "응급헬기 띄울 힘 있는 부모가 아니라 너를 죽인다"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맨 처음 "아들이 쓰러졌다"며 "빨리 (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올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봐 주겠다"고 훈련소 측에서 연락이 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갈지 고민할 게 아니라 빨리 응급헬기 띄워서 큰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매뉴얼에 적시된 응급헬기 이송은 없었고, 아들은 쓰러진 지 이틀 뒤인 지난달 25일 오후 3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아들의 장례식에 온 대대장이 "나는 (아들이 쓰러진) 그날 부대에 없었다"며 "옷을 벗을 것 같다"고 했다는 대목에선 기가 막혔다. 본인 부대에서 철모르는 병사도 아니고 간부인 중대장이 규정을 전부 어긴 무리한 군기훈련으로 멀쩡한 훈련병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 자식 잃은 부모를 앞에 두고 마치 "내 잘못도 아닌데 억울하게 책임지게 생겼다"는 식의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가혹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숨진 박모 훈련병의 영결식이 지난달 30일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열렸다. 뉴스1

가혹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숨진 박모 훈련병의 영결식이 지난달 30일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열렸다. 뉴스1

게다가 문제의 중대장이 (무더위에 얼차려 받느라) 굳은 팔다리로 40도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쓰러진 아들에게 처음 한 명령은 "야! 일어나. 너 때문에 뒤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였다는 편지 속 주장을 읽으니, 어쩌다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됐나 싶다.

사실 앞서 지난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때도 군 간부들 행태에 적잖이 놀랐다. 해병대수사단 조사에서 혐의자로 지목됐다 빠지면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10일 낸 탄원서 내용에 경악했다. 형식은 부하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인데, 실제론 순직 책임을 부하에 떠넘기면서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했다. 누구보다 군 장병 사기를 고려해야 할 군 최고위 간부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전시 상황이나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 안위를 지키려다 희생된 게 아니라, 비상식적인 전시행정 탓에 허망하게 숨진 병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저질의 막말이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말을 삼가며 인내하던 채 상병 어머니조차 지난 12일 공개 편지를 썼을까.

이번 훈련병 사망의 비극도 우리 군이 장병을 얼마나 소모품처럼 경시하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우리 군이 강군이 못 된다면 그건 요즘 젊은 애들이 군기가 빠져서가 아니라 이런 시대착오적인 간부들 탓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