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금리론 기후플레이션 못 잡아…공급 구조 개선으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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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통화 정책 새 변수 된 ‘기후플레이션’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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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방정식에 새롭고 강력한 변수가 등장했다. 폭염과 가뭄·홍수 등 이상 기후로 인해 농산물 생산이 줄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날씨가 물가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실제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이 제일 곤혹스러운 점은 기후 변화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금(金) 사과 등 치솟은 과일값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키웠다. 금리 인하 시점을 저울질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물가가 고공 행진하면 통화 정책의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다.

이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치솟은 과일값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 사과와 배 등이 냉해 피해, 탄저병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각각 전년 대비 30.3%, 26.8% 급감해 공급부족 현상이 햇과일이 나오는 여름 이후에나 가격이 다소 안정될 전망이다. 뉴스1

이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치솟은 과일값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 사과와 배 등이 냉해 피해, 탄저병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각각 전년 대비 30.3%, 26.8% 급감해 공급부족 현상이 햇과일이 나오는 여름 이후에나 가격이 다소 안정될 전망이다. 뉴스1

폭염·가뭄·홍수 등 이상 기후
농산물·에너지 가격 끌어올려

2035년까지 세계 식품 물가
연간 최대 3.2%P 상승 예상

돈줄 조이는 기존 통화정책으론
날씨 따른 인플레 막기에 한계

날씨가 뒤흔드는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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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기후로 인한 날씨는 이미 물가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국립환경정보센터(NCEI)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올해 1~4월은 175년 만에 가장 더웠다. 세계 곳곳의 폭염과 그에 따른 가뭄은 농산물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관련 식품의 가격도 들썩인다. 그중 하나가 ‘초콜릿플레이션’이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카카오 열매를 가공한 것)의 가격은 지난 4월에 이어 다시 t당 1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코코아 가격이 치솟는 건 세계 코코아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극심한 가뭄 탓이다. 엘니뇨(적도 부근의 수온 급등 현상) 등 이상 기후의 영향이다. 국제코코아기구(ICCO)는 지난해와 올해 코코아 생산이 직전 2년보다 11%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커피 가격도 불안하다.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사용되는 로부스타 원두 가격도 1년 새 30% 넘게 올랐다. 엘니뇨 현상으로 로부스타 커피 최대 산지인 베트남(36.5%)의 가뭄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고급 원두인 아라비카 커피는 앞으로 몇 달간 30%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슈가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설탕의 원재료인 원당 생산이 줄며 설탕값은 20%가량 뛸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2·3위 수출국인 인도·태국의 가뭄과 1위 수출국인 브라질의 강우량이 적었던 탓이다.

올리브유 가격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분기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t당 1만88달러로, 1년 전보다 80% 상승하며 분기 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4월에도 1년 전보다 44.7% 뛰었다. 전 세계 올리브유의 40%가량을 생산하는 스페인이 최근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며 올리브 나무가 말라 비틀어져서다.

기후플레이션 자극할 ‘라니냐의 귀환’

기후플레이션과의 힘겨운 동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올여름이 북반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NCEI에 따르면 올해는 기록상 가장 무더운 해 ‘톱 5’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며, 지난해보다 더 더울 것이란 전망은 61%에 이른다는 것이다. 우드웰 기후연구센터의 선임 과학자 제니퍼 프랜시스는 “올해 여름 미국 중부와 유럽에 극심한 폭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뿐만 아니다. 기후플레이션을 제대로 자극할 ‘라니냐(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상태)의 귀환’까지 예상된다. 라니냐는 미국 중남부와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주요 곡창지대에 가뭄을 야기할 수 있다. 대서양에는 허리케인 발생 우려가 커진다. 중국 남부 곡창지대에 홍수가 날 위험도 높아진다. 겨울철 북반구에는 한파를 몰고 올 수 있다. 밀(북반구)과 옥수수·대두(남반구)의 파종과 생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며 생산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라니냐가 가져올 농산물 작황 부진과 그에 따른 가격 급등만큼 걱정스러운 부분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극심한 더위로 냉방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허리케인의 빈번한 발생으로 인한 원유 등의 공급난에, 가뭄으로 남미 지역의 수력 발전에 지장이 생길 경우 천연가스 등의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늘어난 수요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씨티그룹은 “유럽과 아시아의 가스 가격이 50~60%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라니냐 발 한파는 에너지 수요 증가뿐만 아니라 가격 전가 효과도 낳는다. 최진영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겨울철 북반구의 라니냐 발 한파는 난방 수요를 강화해 천연가스 등의 전력원 가격 상승을 유발하며 대체 연료인 난방유까지 자극해 유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며 “산업 금속의 생산 비용도 인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이를 원료로 하는 질소계 비료의 가격이 오르게 된다. 질소계 비료가 전체 시장의 58%를 차지하는 만큼,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들 비료를 사용하는 소맥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하는 이상기후

기후플레이션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지며 인플레이션의 영향력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그 양상은 다양하다. 기후에 민감한 분야나 영역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공급이 줄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상 기후로 물리적인 공급망 교란도 생길 수 있다. 가뭄으로 인해 강과 운하 등의 수위가 낮아져 수로 등을 이용한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는 물류비 증가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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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 세계 물동량의 2.5%가량을 담당하는 파나마운하는 지난해 가뭄에 따른 수량 부족으로 통항 선박 수를 제한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는 해수면보다 수위가 높은 고지대 수로를 갑문으로 연결하고, 가툰 호수의 담수로 수위를 조절해 선박을 고지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배가 다닌다. 하지만 지난해 역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가툰호의 수위가 낮아지자 통항 선박 수를 줄였다. IMF는 “기후 관련 재해가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며 “공급망과 인플레이션의 다이내믹에 대한 이상 기후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플레이션의 영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지구온난화와 폭염으로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2%포인트, 전체 물가는 연간 최대 1.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121개국에서 30년간 집계한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날씨 데이터 총 2만7000개를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전 세계 연간 피해액은 약 19조~59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에 미칠 기후플레이션을 가늠할 분석도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18일 낸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2040년까지 국내 농산물 가격은 0.6~1.1%, 전체 물가는 0.3~0.6%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중앙은행 기후리스크 연구 협의체 NGFS의 ‘제4차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근거로 연중 평균 기온이 2019~2023년 13.2도에서 2040년 13.6~13.8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가정한 결과다. 한은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간접효과 등을 감안하면 실제 기후 변화가 국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온난화로 국내 물가 0.3~0.6% 상승”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갈수록 세지는 기후플레이션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구사하는 금리를 통한 통화 정책이 기후플레이션에는 제대로 통하지 않는 데 있다.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강수량이 적고 기온이 높은 부정적인 기후 환경에서는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려도 향후 2년간 물가상승률은 0.6%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비슷한 내용의 연구 결과를 내놨다. 기온과 강수량 등 날씨 충격으로 인한 식품 가격 급등이 단기적으로는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지만, 근원 물가와 중기적인 물가 흐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만큼 기후 변화로 인한 농산물 물가 상승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화 정책보다는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8일 ‘상반기 물가 안정 목표 운영 상황 점검 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은 통화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과일 등 가격 변동성이 높은 농산물의 경우 생산성 제고와 비축 역량 확충, 수입선 확보 등 공급 채널 다양화가 필요하다”며 “어떤 구조 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