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재섭이 소리내다

관례 무시한 다수결 원칙은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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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재섭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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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 구성을 놓고 여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 14일 법제사법위원회가 국민의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국회 상임위 구성을 놓고 여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 14일 법제사법위원회가 국민의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벌써 불안하다. 22대 국회가 시작부터 산으로 간다. 여당은 농성, 야당은 폭주다. 거대 야당이 독주하는 동안 심판인 국회의장은 노골적으로 야당의 편을 들고 있다. 쪼그라든 여당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타협의 접점은 보이지 않는데 민생은 표류하고 있다. 일 좀 하라고 보내놓은 국회의원들은 일꾼이 아니라 진영의 전사로 전락하고 있다. 갑갑하다.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싹쓸이 #국민의힘은 무기력증에 빠져 #전문성보다 상식 회복이 먼저

진영의 전사가 된 국회의원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김 의원은 앞선 칼럼에서 못난 국회를 개선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나는 국회의원이 한 상임위에 오래 머물게 해서 각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키우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국회에서의 ‘다수결 원칙 강화’라는 주장부터 검토해 보자. 170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폭주는 그야말로 비상식적이다. 국회가 오랜 시간 지켜온 정치적 관행을 무참히 파괴하고 의회 민주주의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있다. 제2당이 맡았던 법제사법위원장과 여당이 맡아온 운영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식했다. 언론의 지배구조를 다뤄서 가장 정치적으로 첨예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도 차지했다. 이 모든 결정은 다수결을 앞세워 순식간에 관철됐다. 민주당의 모든 비상식의 힘은 다수결로부터 비롯됐다.

 물론 의회 정치에서는 여야가 모든 사안에 대해서 합의를 도출할 수 없기 때문에 다수결 적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처럼, 의회 민주주의 전통을 무너뜨릴 만큼 다수결의 원칙이 중요하다고 하면 모든 사안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붙이면 그만이지 새삼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의회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의회 정치에서는 다수결만큼이나 토론과 숙의가 중요하다. 우리 헌법에서도 다수결의 원칙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기본권 보호 규정들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지금 행태는 반헌법적이고 반의회적이다.

 모든 국회의원은 각 지역에서 ‘다수결’로 선출된 사람들이다. 다수당이라도 또 다른 국민의 대표인 소수당을 배제하고 무시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머릿수의 우위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을 다수결이라는 언어로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달은 차면 기우는 법이고, 아름다운 꽃도 열흘이면 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 국회의원이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말고 오래 일하면서 전문성을 키우자는 주장을 검토해보자. 전문성이 있으면 좋겠지만 국회의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따로 있다. 군대에서 장성급으로 진급하게 되면 가슴에 부착하는 휘장에서 병과 표시를 제거한다.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은 더는 특정 병과의 전문성에만 편중하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장성을 두고 ‘종합적’이란 뜻을 가진 ‘general’로 부른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에 편중되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관점이 좁아지는, 이른바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공자님마저 군자불기(君子不器)를 외치며, 지도자는 한 분야에 매몰되지 말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어떤 정치인이 특정 분야의 ‘고인물’이 될 때 그 분야의 이익집단들과의 유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훨씬 강조되지만 권한은 오히려 국회의원보다 훨씬 작은 일반 공무원들에게도 순환보직을 의무로 두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국회의원이 한 상임위에 오래 머물 때, 그는 고인 물을 넘어 ‘썩은 물’이 될 수도 있다.

복수 상임위로 일하는 국회 만들자

 차라리 국회의 상임위원회를 세분화해서 의원 모두가 2개 위원회를 동시에 겸임하게 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의회 정치가 모범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들과 비교해 보자면, 우리 국회는 의원 1인당 담당해야 하는 인구가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담당해야 하는 업무의 범위도 매우 넓다. 그렇다고 우리 정치 문화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우리 국회의 상임위원회는 이질적인 분야를 한 상임위원회에 통합해 놓아서 상임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일들이 많다.

 예컨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과 관련한 정쟁 때문에 과학기술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는 점이나, 법제사법위원회가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권도 가지면서 사법 이슈까지 다루는 등 상임위의 권한이 지나치게 과도해지는 점이 그렇다. 따라서 지금보다 상임위원회를 분야별로 더 세밀하게 쪼개고, 각 의원은 2개 이상의 상임위에 배정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의원들은 상임위원회 1개씩을 배정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상임위원회 1개씩에도 예비 위원으로서 배정받아서 활동한다. 또한 미국이나 네덜란드, 덴마크 그리고 스페인 등에서 의원들은 2개 이상의 상임위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우리 정치가 정치인들의 전문성이 없어서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국회의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 칼럼은 6월 12일자 26면에 게재된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칼럼에 대한 다른 목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