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북·러 회담…'반미 연대' 뒤엔 속내 따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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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저녁 24년 만에 평양을 찾는다. 푸틴의 방북 결과에 따라 북·러 관계는 물론 한반도 및 역내 정세에도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에도 합의했다. 이날 오전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동시 게재된 푸틴의 기고문과 북측의 환영 사설은 한목소리로 미국을 비난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이를 통해 엿본 정상회담의 키워드에서는 양 측 간 미묘한 차이가 감지됐는데, 푸틴은 제재 돌파를 통한 독자적 무역 블럭 구축 등 경제 분야에,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승인 등 안보 분야에 방점을 찍었다.

"동지 김정은" 부른 푸틴…동병상련 반미연대 확고

푸틴은 18일 노동신문 1면 기고문의 대부분을 '미국 저격'에 할애했다. 양자 방문을 앞두고 상대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언론 기고에 제3국에 대한 비난을 담는 것 자체가 통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푸틴은 “미국은 본질에 있어서 '이중 기준'에 기초한 세계적인 신식민주의 독재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이른바 '규정에 기초한 질서’를 세계에 강요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 하고 있다"며 "이런 입장에 응하지 않고 자주 정책을 펴는 나라들은 혹독한 대외적 압력에 부딪히고 있다"고 했다.

푸틴은 김정은을 “타바리시(tovarisch, 공산당 동지)”라 부르며 북한과의 역사적 관계를 상세히 거론하기도 했다. “소련은 세계 최초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했으며, 1950~53년 6·25 전쟁에서 “조선의 인민의 투쟁을 지지했다”면서다. 러시아 최고 지도자가 소련의 6·25 참전을 공개 인정한 건 이례적인데, 푸틴은 지난해 김정은의 방러를 앞두고 주고 받은 친서에서도 이런 사실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푸틴이 김정은을 동지라 부르며 과거의 혈맹 관계를 강조한 건 러시아가 양국 관계를 이 수준까지 끌어올릴 용의가 있다는 뜻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신문 사설 역시 양국 관계를 "공동의 원수를 격멸하는 전투적 우의와 혈연의 유대" "불패의 전우 관계" 라고 묘사하며 미국을 비판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분별한 책동에 대처해 전투적 연대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두 나라는 다극화된 새 세계 건설을 위한 전략적 보루"라고 강조하면서다. 사설은 푸틴의 이번 방북이 북·러의 “선린 우호 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가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러 주도 '나쁜 공급망 연대' 만들기

푸틴은 또 "우리는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과 상호 결제 체제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북·러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미국 주도의 무역 질서를 무시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를 블록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피해 별도의 공급망 사슬을 구축하는 것으로 제재 국면을 돌파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푸틴 기고문·환영 사설에 공통적으로 언급된 "다극화된 세계"도 이런 양측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2014년 러시아 중앙은행이 만든 국제금융통신망(SPFS)을 확장하고, 루블 결제 체계에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일 수 있다.

현승수 위원은 "루블 결제 체제는 결국 미국의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러시아의 세계 전략"이라면서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의 가장 큰 관심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도 관영 매체 인터뷰에서 “현재 유엔 대북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양국 간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루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고립 국가인 북한에까지 손을 뻗는 건 폐쇄적으로 끌고가는 전시 경제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두 자력 갱생 국가 간 협력엔 한계가 여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 연방 관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북·러 교역 총액은 4만 469달러 수준으로, 코로나19 초반인 2020년에도 4274만 달러 수준이었다. 한·러 교역액이 200억 달러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턱 없이 작은 규모다.

또 북한이 선호하는 외화는 여전히 달러로, 북한 쪽에서 러시아의 루블화 체제 편입에 얼마나 적극적일 지는 미지수란 시각도 있다. 반면 북한이 SPFS에 편입되는 순간 대북 현금 유입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러시아의 불법 소지가 커지는 동시에 다른 국가들이 참여를 주저할 변수도 있다.

김정은, 푸틴 축복속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초래한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북한과 손을 잡았다면, 북한의 노림수는 정상 외교 이벤트를 위한 체제 안정과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서 인정받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사설을 통해 "(러시아는)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발광적인 전쟁 도발 책동에 가공할 핵 억제력으로 맞서는 인민의 투쟁에 확고한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기고에서 "러시아는 어제도 내일도 교활하고 위험하며 침략적인 대결과 투쟁에서 조선 인민을 지지한다"고만 했는데, 북한은 이에 더해 러시아가 ‘핵 억제력’을 지지한다고 부각한 것이다.

실제 푸틴이 북핵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올해 3월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 핵 우산을 갖고 있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방북에서 푸틴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면, 김정은에겐 커다란 외교적 선물이다.

다만 이에 대해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핵 개발을 공개적으로 용인하면 주변 국가들의 도미노 핵 개발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러시아도 원하지 않는 결과”라면서 “현재까지는 북한의 희망 사항에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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