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버리고 배트 무게까지 낮춘 한화 이재원의 간절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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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18년 동안 정든 팀을 스스로 떠났다. 타자의 자존심인 '방망이 무게'까지 줄였다. 한화 이글스 포수 이재원(36)이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한화는 지난 겨울 포수 이재원과 계약했다. 연봉은 사실상 최저연봉에 가까운 5000만원.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우승을 이끈 뒤 4년 최대 69억원에 계약했던 이재원으로선 모든 걸 내려놓은 거나 다름 없었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도, 이재원도 웃었다. 이재원은 5월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나 6월 이후 최재훈의 백업으로 자주 마스크를 썼다. 방망이도 쏠쏠했다. 22경기 타율 0.333(45타수 15안타) 6타점. 지난해 27경기에 나가 타율 0.091(48타수 4안타)를 기록했던 걸 감안하면 대단한 반등이다.

특히 최재훈이 허벅지가 좋지 않았던 지난 11~15일 열린 5경기에서는 17타수 10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차는 포수들에게 여름은 힘든 시기다. 하지만 이재원은 "경기에 나가다보니 몸이 아프지 않다"며 웃었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허허허"하고 웃은 이재원은 "원래 33.5인치(85.1㎝), 880g짜리를 썼다. 올해는 33인치, 840g으로 줄였다"고 했다. 2018년엔 홈런 17개를 칠 정도로 펀치력이 있던 그다. 보통 슬러거들은 900g 내외의 배트를 쓰고, 880g도 무거운 편에 속한다. 똑같은 스윙을 했을 때 방망이 무게 10g를 낮추면 비거리 1m 정도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여름이 오면 가벼운 방망이를 쓰는 타자들도 있다. 하지만 10~20g 정도다. 그런데 길이도 줄이고, 40g을 줄였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재원은 "최근 몇 년간 방망이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쉽지는 않다"며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가 해왔던 게 있기 때문에 버리기 쉽지 않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니까 다 내려놓고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포수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타석에서의 전략도 바꿨다. 지난 2년간 이재원은 초구를 잘 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휘두른다. 결과도 좋다. 초구 타율은 0.333(12타수 4안타), 3구 이내에 타격을 끝낸 비율도 54.7%다. 이재원은 "사실 초구 공략은 부담감이 있다. 결과가 안 나오면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밸런스가 나쁘지 않아서 경험과 상대 투수에 맞춰 초구를 칠 때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정신적인 부분이 가장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이재원은 인천고를 졸업하고 인천 연고 SSG에서만 뛰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더 뛰고 싶어 낯선 곳, 낯선 팀에 왔다. 그리고 포수 출신 김경문 감독도 그런 마음을 알기에 격려했다. 김 감독은 "(포수라 체력부담이 큰)최재훈도 쉬어야 한다. 이재원도 야구를 잘 했던 선수이기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고 싶다. 그러면 팀에도 좋은 일"이라고 격려했다.

이재원은 "감독님과 함께한 적은 없지만 많은 힘을 주셨다. 큰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사실 야구가 쉬운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에서 배터리를 이루게 된 류현진(왼쪽)과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에서 배터리를 이루게 된 류현진(왼쪽)과 이재원. 사진 한화 이글스

SK는 2006년 동산고 투수 류현진을 제치고 1차 지명에서 이재원을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류현진이 올해 한화로 돌아왔고, 이재원과 함께 뛰게 됐다. 많은 관심과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재원은 "현진이 공이 너무 좋다. 좋은 투수의 공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웃었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재원은 "한화가 아직 성적이 좋지 않아 힘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려고 (김)강민이 형과 노력하고 있다. 감독님이 베테랑들을 믿어주는 건 솔선수범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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