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교주고슬(膠柱鼓瑟)과 인상여(藺相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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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山西)성 린펀(臨汾)시 인상여공원에 위치한 인상여 동상. 바이두(百度)

중국 산시(山西)성 린펀(臨汾)시 인상여공원에 위치한 인상여 동상. 바이두(百度)

“대왕께서 명성만 듣고 그를 기용하시는 것은 마치 ‘거문고의 기러기발(雁足)’을 아교로 단단히 붙여놓고 거문고를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趙括)은 부친이 남긴 병서나 암송하는 수준입니다. 변화에 대처할 줄을 모릅니다”.

전국(戰國)시대 말기, 조(趙)나라 재상 인상여(藺相如)는 조괄이라는 젊은 장수를 중요 전투의 총사령관으로 기용해선 안 된다고 왕에게 조언한다. 조괄이 융통성을 발휘하며 전투를 지휘하는 그런 능력은 갖추지 못한 장수였기 때문이다. 조나라 효성(孝成)왕은 이 조언을 무시했다.

결국 장평(長平)대전에서 조나라는 대패한다. 병사 약 45만 명이 생매장을 당하는 끔찍한 피해를 보았다. 조괄도 전사했다. 적국 진(秦)나라 첩자의 말에 현혹된 왕이 장평에서 잘 방어하고 있는 염파(廉頗) 장군을 괜히 불러들이고 조괄을 그 자리에 내보낸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번 사자성어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이다. 앞의 두 글자 ‘교주’는 ‘아교로 고정시키다’란 뜻이다. ‘고슬’은 ‘거문고를 연주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을 결합하면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고정하고서 연주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거문고의 기러기발은 현들을 밑에서 지탱하는 부분이다. 날씨에 따라 줄이 팽팽해지거나 느슨해지는 것에 신축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장치다. 음의 피치(pitch) 조정을 원할 때, 이 기러기발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교주고슬’은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서 유래했다.

인상여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탁월한 임기응변과 대담성으로 조나라 혜문(惠文)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일약 재상으로 발탁됐다. 인상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 전국칠웅(戰國七雄) 사이엔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국력은 진나라가 가장 강했다. 조나라도 약소국은 아니었으나 진나라의 위협과 침입에 시달렸다. 하지만 인상여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동안은 조나라 침공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것이 진나라의 기본 방침이었다. 이 대목에서 인상여의 존재감이 잘 드러난다.

진나라가 인상여를 처음부터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옥(玉)에도 여러 등급이 있다. 당시 중국에선 ‘화씨벽(和氏璧)’을 으뜸으로 쳤다. 진(秦)나라 소양(昭襄)왕이 조나라에 이 옥 1개와 성(城) 15개를 교환하고 싶다고 거짓 제안했다가 조나라 사신 인상여에게 자신의 궁정에서 크게 망신을 당한 일화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상여의 놀라운 기지와 대담성이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졌고, 진나라도 그를 각별히 주의하기 시작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사자성어의 유래가 된 인상여와 염파 장군 사이의 ‘우정 일화’도 꽤 유명하다. 염파 장군은 유능한 장수였다. 하지만 천한 출신에 ‘입과 혀’만으로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인상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상여를 마주치면 꼭 욕을 보이고 말겠다”. 이 말을 그는 입에 달고 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조회가 있는 날은 병을 핑계로 피했다. 혹시 길에서 마주치면 급히 수레를 돌려 숨곤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인상여의 사인(舍人)들은 창피하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면전에서 불평을 터트린다. 인상여는 그들에게 해명했다. “나는 적국 진나라 왕의 궁전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 잘못을 꾸짖은 사람이오.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을 겁내겠소. 저토록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염파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오.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고 사적인 원한은 그다음이라 내가 미리 피하는 것이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어 상체를 드러낸 채 가시나무 회초리를 한 짐 지고 인상여를 찾아와 깊이 사죄했다. 이날부터 두 사람은 ‘목을 내놓을 정도의 우정’을 뜻하는 ‘문경지교’를 맺었다.

바야흐로 ‘고학력 시대’다. 지혜와 지식은 동일하지 않다. 특히 성찰(reflection)에서 지혜는 지식과 본래 무관하다. ‘아둔하다’, ‘어둡다’, ‘고지식하다’ 등 지혜의 반대말은 많다. 일찌감치 인상여가 경고한 ‘교주고슬’ 이 네 글자가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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