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꽂혔지만 로봇 안 만든다…손 안대고 돈 버는 젠슨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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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로봇 유망하다는 엔비디아, 왜 직접 안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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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로봇’을 유망 기술이자 차세대 먹거리로 꼽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도 로봇에 ‘꽂힌’ 사람 중 하나다. 지난 3월 엔비디아 개발자컨퍼런스(GTC)에서 그는 사람처럼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깜짝 공개하며 “AI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소개했다. 엔비디아 로보틱스·엣지 컴퓨팅 사업을 이끄는 디푸 탈라 부사장을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엔비디아는 로봇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엔비디아의 시선은 그보다 높은 곳을 향했다. 엔비디아 ‘로봇 대장’에게 그들이 꿈꾸는 미래 로봇사업 전략을 들었다. 로봇 사업을 총괄하는 핵심 임원이 국내 언론과 하는 첫 인터뷰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 그랜드 하이라이 호텔 3층 엔비디아 전시 부스에 들어서자 사람 크기 로봇 2대가 반겼다. 전날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선언한 황 CEO 옆에서 마치 그 혁명의 주인공은 자신들이라는 듯 무대를 돌아다닌 배달·순찰 로봇이다. 하나는 대만 PC·서버 제조업체 위스트론이, 다른 한 대는 한국 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가 만들었다. 모두 엔비디아의 소형 로봇용 칩셋 ‘젯슨’이 탑재됐다.

디푸 탈라

디푸 탈라

엔비디아는 왜 지금 로봇을 얘기하나?
“로봇 공학의 궤도를 바꿀 두 가지 기술이 이제 꽃을 피웠다고 판단해서다. 첫 번째는 당연히 생성 AI다. 로봇이 해야 할 작업은 다양한데 과거 딥러닝 방식에서는 특정 작업별 모델을 하나하나 훈련해야 했다. 이제는 범용 모델인 생성 AI를 통해 하나의 AI로 통합 학습(훈련)이 가능해졌다. 생성 AI로 로봇 공학에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 거다.”
두 번째는 뭔가.
“디지털 트윈(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이를 10년 넘게 준비해왔고, 이제는 기술적으로 성숙 단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현실 세계에서 로봇을 만드는 건 고비용·고위험이다. 거대한 로봇 팔을 개발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로봇 옆에 서서 테스트한다는 건 인간한테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과 똑같이 재현해놓은 가상 환경에서라면 괜찮다. 이젠 가상환경에서 AI를 탑재한 로봇을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다. 생성 AI와 디지털 트윈, 두 기술이 만나 로봇 개발에 새 시대를 열었다. 앞으로 10년간 로봇 공학은 무한하게 발전할 것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그래픽처리장치(GPU)는 15년 전만 해도 전자업계의 변방이었다. 지금은 AI 학습·추론에 꼭 필요한 황금 기술이 됐다. 이를 주도한 게 엔비디아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테슬라·아마존·구글의 시가총액을 잇달아 넘어섰고, 최근엔 애플마저 무릎 꿇렸다. 그 엔비디아 손에 ‘로봇’이 있다. GPU를 ‘AI 학습’에 활용해 성공했던 그 방식대로 이젠 자사 핵심 기술을 ‘로봇 학습’에 쓰겠다고 한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가 AI 학습·추론에 사용되는 것처럼 로봇 학습에서도 엔비디아 플랫폼이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뜻인가?
“정확하다. 다만 로봇에서의 AI는 데이터센터 기반 생성 AI보다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챗GPT를 사용할 때는 데이터센터로 답을 요청해서 받게 돼 있다. 이때는 데이터센터 한 곳에서만 AI 학습·추론이 진행된다. 하지만 로봇에서는 총 3곳에서 컴퓨팅 작업이 이뤄진다.”
3곳에서 컴퓨팅?
“우선, 데이터센터에서 AI를 훈련·추론시키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구동돼야 한다. 둘째는 로봇에 탑재되는 젯슨 같은 엣지 컴퓨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 둘 사이에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옴니버스’ 기반의 컴퓨팅이다. 옴니버스에선 시행착오나 추가 비용 지출 없이 로봇을 훈련할 수 있다. 3개 컴퓨터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로봇을 훈련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현재 AI 학습·추론용 칩 시장 90%를 독차지한 엔비디아의 다음 시선은 이미 로봇 컴퓨팅에 가 있었다. 탈라 부사장 말대로라면 로봇 학습·추론용 칩 시장은 단순 계산으로도 지금의 서버용 AI 칩 시장보다 3배 이상 커진다.

AI 탑재 로봇의 최종 목적지는 휴머노이드, 즉 인간을 닮은 로봇이다. 인간처럼 걷고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려는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엔비디아는 개별 제품 개발을 넘어 로보틱스(로봇 공학) 시장에서 통용되는 플랫폼을 개발하겠단 야심을 지난 3월 GTC에서 드러냈다. 휴머노이드 개발사를 위한 범용 모델 ‘그루트’(GR00T·Generalist Robot 00 Technology)를 공개하면서다.

탈라 부사장은 그루트를 엔비디아 로봇 비전의 핵심이자 정점으로 꼽았다. 황 CEO 역시 “세상에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로봇은 휴머노이드”라면서 “이 분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정의하는 휴머노이드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있다면, 가정이나 병원·상점에서 일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탄생한다면 미래에 가장 큰 로봇 시장 중 하나가 될 거다. 대부분 사람이 휴머노이드를 인간과 비슷한 하나의 폼팩터(기기 형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봇을 휴머노이드라 규정짓는 요소는 로봇에 탑재된 지능이 어떤 학습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프로젝트 그루트란 무엇인가.
“그루트는 기본적으로 휴머노이드의 기초 모델을 만드는 작업이다. 텍스트 ·음성을 사용하거나 영상 데이터 입력 및 학습을 통해 로봇 공학에서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기초 모델을 만든다. 그루트를 통해 탄생하는 로봇은 모두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을 것이다. 자연어를 이해하고 인간의 행동을 관찰해 움직임을 모방하도록 설계된다. 실제 세계를 탐색하고 적응하며 상호 작용하기 위해 필요한 민첩성과 여러 기술을 가상 공간에서 빠르게 학습할 것이다. 핵심은 학습이다. 마치 GPU가 AI를 학습시키듯 수천 가지 실험을 병렬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하고 쉽게 로봇 테스트가 가능하다.”
엔비디아의 ‘휴머노이드’ 언제 나오나.
“엔비디아는 이제 로봇 공학을 위한 플랫폼 회사다.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인 아이작, 젯슨 토르와 같은 휴머노이드에 이상적인 엣지 컴퓨터, 가상 세계에서 로봇을 로봇답게 훈련하는 디지털 트윈 옴니버스까지 (다 갖췄다). (그루트를 활용한) 엔비디아가 직접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제품 출시 시점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각종 로봇을 만들고 있는 수백, 수천 개 기업이 결국엔 우리 엔비디아 플랫폼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엔비디아의 메시지는 놀랍도록 명확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엔진도 계속 엔비디아가 만들겠다.” 건축 자재에 해당하는 GPU와 집 짓는 도구에 비유되는 전용 소프트웨어 ‘쿠다(CUDA)’로 AI 칩 시장을 독점했던 엔비디아가 성공 공식을 고스란히 로봇에 가져와 또 한 번의 독주를 준비한다는 뜻이다. 로봇 개발 시장에서도 표준 도구를 만들어 엔비디아 없이는 그 어떤 휴머노이드 로봇도 작동하지 않는 미래, 그리고 그 뒤에는 어김없이 엔비디아의 GPU가 있다. 엔비디아의 로봇 빅픽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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