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대 증원 반대가 환자 생명보다 중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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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원·존중받아 온 국립 서울대 교수 먼저 휴진

구체적 ‘정원 대안’ 없이 휴진 명분만 쌓는 의협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어제부터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지난주 전체 교수 967명 중 54.7%인 529명이 휴진에 찬성했고, 상당수가 어제 참여했다. 교수들은 환자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 진료 일정 연기를 통보했다. 진료일에 맞춰 모든 일정을 조정하고, 몇 달씩 기다려 온 환자들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응급·중증·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유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치고 위중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항암 치료가 한 달 연기됐다는 환자의 “신장암 4기가 중증이 아니면 어떤 환자가 중증이냐”는 절규가 현장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항암 치료 검사에서 초음파는 생략하고, 혈액에서 전해질 수치 확인이 안 돼 환자가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국가 최고 병원의 의사로서 많은 직간접적인 공적 지원을 받아 왔다. 올해 정부 출연금만 6129억원에 이른다.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서 명예를 존중받아 왔다. 그만큼 집단 이익보다는 의료의 공공·공익성을 먼저 고려할 것이란 사회적 기대가 컸다. 그런데도 가장 먼저 환자 곁을 떠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교수들의 휴진 명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확정된 내년 대입 정원을 이제 와 수정할 수 없다는 점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도 정부가 이미 철회했다. 정부로서는 부담을 안고 양보했는데, 이마저도 부족하니 아예 취소하라는 것은 법 집행의 일관성을 포기하라는 요구다. 명분이 없기는 오늘부터 집단휴진을 하는 의협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과 접촉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의협이 정부에 행정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거절을 빌미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휴진의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정원 재논의’만 외칠 뿐 어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진료명령과 휴진신고 명령을 내린 상태다. 전체 의료기관에 업무개시 명령도 발령했다. 대형병원의 손해에 대해선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환자와 국민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한 만큼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다시 책임을 면제해 달라며 집단행동을 할 것인가.

그나마 환자 생명이 소중하다며 힘들어도 현장을 유지하는 의사들이 있어 다행이다.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대한분만병의원협회, 대한아동병원협회 등은 “환자 곁을 떠나기 어렵다”며 휴진 불참을 선언했다. 의사들은 “10년 뒤에 활동할 의사가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며 당장 수십만 명의 중증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홍승봉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위원장)이라는 동료의 고언을 되새겼으면 한다.